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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유성우의 한가운데.

by @Zena__aneZ 2024. 4. 21.

깊은 밤이었다. 하늘에 수많은 새가 날아다닌다. 깊은 설원 속에 숨어사는 식인 마수였다. 한마리만 있을 때는 위협적이지 않았지만 그 마수는 무리지어 다니는 습성이 있었다. 겨울꽃 흐드러지는 설원에서 사는 새가 왜 이런 평원에 떼지어 나타난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분명한 사실은 여기서 처리하지 못하면 수많은 사상자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스타, 괜찮겠어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자리에 있는 둘은 수많은 전투원보다도 더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해낼 수 있었다. 스타는 할 수 있다는 듯 옅은 미소만 지었고, 플레린은 그것을 보고 같이 옅은 미소를 짓곤 보호막을 만든다. 둘의 손등에 푸른 마법진이 새겨진다. 스타에게 걸려있는 방어막이 깨진다면 곧바로 플레린이 알아채 다시 보호막을 만들어줄 수 있도록. 그렇게 연결하는 마법은 치유사와 검사 사이에 유대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곧 스타의 몸이 떠오른다. 최대한 시선을 끌어주세요. 30분 후에 유성우를 떨어트릴게요. 스타는 그 말을 듣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검을 꺼내들었다. 플레린의 유성우 마법은 찬란하고 아름다웠지만, 그만큼 힘의 소모가 극심한 마법이었다. 스타는 플레린이 그 마법을 쓰지 않도록 전부 처리할 생각이었다.

스타는 실력있는 검사였다. 그가 든 검이 적을 빗나가는 일은 없었다. 하얗게 빛나는 검이 우아한 궤적을 따라 마수를 도륙낸다. 깊은 밤이 어두울 법도 했으나 플레린이 밝혀주는 하늘길을 따라가면 결코 적을 놓치는 일도, 검이 빗나갈 일도 없었다. 하지만 적의 수가 너무나도 많은 탓이었는지, 마수의 배를 파고든 검을 채 빼내기도 전에 다른 마수의 공격을 받았다. 식인 마수의 이빨이 몸통을 물어뜯으려고 하는듯 입을 쩍 벌린다. 단단히 걸어놓은 보호막 위로 강렬한 파동이 느껴진다. 보호막이 깨지기 전 아슬아슬하게 마수를 베어내고 멀어진다. 스타는 플레린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으나, 그 자리에는 플레린이 없었다. 곧 머리 위에서 마나의 강렬한 흐름이 느껴져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면-

 

"이쪽으로 와요!"

 

플레린의 목소리에 빠르게 날듯 올라가 플레린을 안아들고 그녀를 노린 마수를 횡으로 가른다. 다칠 뻔했어... 괜찮아요, 안 다쳤잖아요! 그런 대화가 오가고 하늘에서는 유성우가 떨어진다. 눈부신 불꽃을 머금은 것이 마수를 전부 불태운다. 은빛의 머리칼과 연푸른 눈, 그리고 보랏빛의 눈이 유성우의 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난다. 플레린에게서 마나가 쉴새없이 빠져나가고, 스타는 그런 플레린을 안아들고 천천히 내려갔다. 바닥에 발을 디딜 때쯤 마수가 완전히 사라졌다. 황홀한 유성우의 빛이 잔상처럼 깊게 남는다.

 

"마나를 너무 많이 쓴 거 아니야?"

 

"최대한 아끼면서 써보려고 했는데, 저도 모르게 고양감에 휩싸여서.."

 

헤헤, 하고 웃는 모습을 보다가 작게 핀잔을 주고는 플레린을 안아든다. 걸을 힘은 남아있었지만 아까 부상을 입을뻔한 것이 영 걱정되었는지 내려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지켜줘서 고마워요. 플레린은 나른하게 눈을 감고 웃어보인다. 스타는 그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다 안아든 팔에 힘을 준다. 검사인 나를 조금 더 믿어줘. 에, 언제나 믿고 있는데! 못 믿어서 그런 게 아니라며 해명하는 모습에 또 웃음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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