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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6피트 아래에서.

by @Zena__aneZ 2024. 4. 28.

생이란 참 부질없다. 세룰리아는 늘 그렇게 생각했다. 악마와 마족이라는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두 종족은 끊임없이 투쟁을 일삼았다. 본인이 악마임에도 그런 생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타 종족과 교류하게 되자 악마 사회 내부에 있던 문제들은 더욱 심해졌다. 차별과 멸시는 줄어들지 않았고, 서로를 향하던 증오의 칼날은 이제 외부에도 향하게 되었다. 오래도록 이어진 천족과의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악마와 마족 사이에서는 날개의 색으로 등급을 나눈다. 보유하고 있는 절대적인 마력의 양으로 날개의 색이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신분제가 사라진 것은 한참 전의 이야기였지만 여전히 신분제가 남아있는 것처럼 사회가 굴러간다. 너무나도 많은 존재가 상처받고 죽었다. 끝나지 않는 전쟁의 한가운데서 세룰리아가 굳이 치유사라는 직업을 고른 것은, 자신만큼은 누군가를 지키고 싶어서였다. 모두가 세룰리아의 선택을 바보 같다고 여겼지만 누군가는 그 선택으로 인해 구원받았으니 틀린 선택도 아니었다.
 
"세룰리아, 이쪽에 지원이-"
 
통신 마법이 끊겼다. 세룰리아는 이를 악물고 빠르게 뛰어간다. 등에 곱게 접혀있던 검푸른색의 날개가 넓게 펼쳐져 하늘을 날아오른다. 모두가 고귀하다고 이야기할 법한 색의 날개가 전쟁터의 한가운데서 붉게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니 그것 또한 우스운 일이었다. 강렬한 마나가 넓게 퍼져나간다. 검푸른 빛 장막이 아군과 적의 사이를 가로막고는 눈에 새겨진 X자 표식이 더욱 하얗게 빛난다. 흐릿한 작열감이 눈에서부터 시작해 혈관 속으로 퍼지는 느낌을 받노라면 무엇보다도 강렬한 치유술이 전개된다. 많은 이들이 살게 되었지만, 반대로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다. 아군을 치유한다는 것은 결국 적군을 죽이는 것이기 때문에. 세룰리아는 늘 아이러니 속에서 살고 있었다. 살리는 것이 곧 죽이는 것이 된다. 누군가가 살면 누군가는 죽는다. 세룰리아는 자신이 살린 사람보다 죽인 사람이 더 많다는 생각을 한다. 전쟁터 한가운데서 치유사로써 서있는다면 멀쩡한 사람보다 다친 사람을, 숨이 붙어있는 사람보다 죽어가는 사람을 더 많이 보게 된다. 자비의 악마라는 불명예와도 같은 칭호를 얻은 세룰리아는 제게 붙은 칭호를 싫어하지 않았다. 결국 더 많은 이들을 살렸다는 증거였으니.
세룰리아는 땅을 판다. 6피트를 파고 내려간다. 무덤을 묻을 때 파는 깊이였다. 아무리 많은 이들을 살렸다고 해도 모두를 살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흙을 파는 이들은 모두 익숙한 듯했다. 세룰리아도 그것이 익숙하다가도 문득 익숙하지 않은 기분이 든다면 땅 속에서 위를 올려다본다. 분명 똑같은 곳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던 이가 죽어 차가운 흙 속에 묻힌다. 세룰리아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위로 올라간다. 땅에 사람을 내리고 흙을 덮는다. 머지않아 그 육신은 흙이 되어 땅으로 돌아가겠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신념을 가지고, 어떤 것을 가지고 무기를 들고 필사적으로 싸웠는지 모른다. 아마 앞으로도 영영 모르겠지. 세룰리아는 영 흐린 표정으로 시신이 묻힌 땅을 바라보다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한다. 부디 안식에 들기를. 이 세상에서 찾지 못한 희망을 안식 이후에는 찾을 수 있기를. 악마와 마족에게는 환생의 기회가 없다고 하지만, 부디 기적이 일어나기를...
 
"세룰리아, 안 쉬어도 괜찮겠어요? 피곤해 보이는데."
 
"괜찮아요. 바로 병원으로 가도 괜찮을 정도의 컨디션이에요."
 
세룰리아는 옅은 미소를 머금고 대답하곤 걸음을 옮겼다. 병원이라고 불리는 건물은 거의 다 무너질 뻔했으나 복원마법과 방어진을 겹겹이 깔아 두어 건물이 제기능을 하게끔 만들었다. 혹여나 공습이 일어나도 멀쩡하게끔. 세룰리아는 병원 복도를 걷다 문득 뒤돌아본다. 병원만큼 죽음의 향기가 짙은 곳이 없다. 세룰리아는 다시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 환자들에게 치유마법을 걸어준다. 그중 한명은 또 상태가 심각해졌지만 어찌 위기를 넘긴다. 세룰리아는 아무도 없는 환자실 안으로 들어가 무너져내린다. 다친 이들을 모두 살리고 싶다는 마음은 언제나 존재했다. 하지만 그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었다. 죽을 이는 필연적으로 죽는다. 살리지 못해 죽는 것이 아니라 죽었기에 살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 사실이 지독하리만치 아프게 다가온다. 세룰리아는 손을 꾹 모아 잡고 기도한다. 자신이 살리지 못한 이들이 다음 생을 얻기를. 부디 다음생을 얻어 행복해지기를. 이승에서 찾지 못한 행복을 6피트 아래에서 찾아 마음속에 잘 품은 채로 이 세상에 돌아오기를.
세룰리아가 살아온 삶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독하게 불행했다고 해야 할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다시 이 세상에 돌아오길 바라는 것은, 아무리 불행하다고 해도 모든 시간이 불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사는 모든 시간이 불행하기만 할 수가 있을까? 사는 것이 아무리 부질없다고 해도, 세룰리아가 행복하다고 느낀 순간은 분명 살아있는 순간이었는데. 모든 이들이 그러지 않을까? 그래서 더욱 간절하게 기도한다. 아무리 슬퍼도 살기를. 절망하되 포기하지 않기를. 그리하여, 마침내 웃을 수 있기를. 죽는 순간에 희망이 없다고 느꼈다면 6피트 아래에서라도 희망을 찾아 간직하기를. 다음 생이 없는 종족이라고 해도, 부디 기적이 찾아가기를.
악마는 신을 믿지 않는다. 악마는 늘 존재하고 존재했던 자들에게 기도한다. 죽은 자들에게 필사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지독하게도 악마적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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