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그저 귀향이어라.
진실을 알았다.
그것만이 유일한 무게를 가졌다.
복수하고 싶다는 것은 상실 앞에서 무너진 개인의 비루함으로부터 새어 나오는 나약함이었을 뿐이었다. 그들은 진실을 마주하겠다는 일념 하에 각자 다른 죄악감을 품고 대천사들을 상대했으나, 결국 그들의 검이 대천사를 단죄할 일은 없었다. 결국 슬픔이나 원망이나 증오와 같은 것은 개인의 날것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날것을 남에게 되돌려줄 성정이 되지 못했다. 그것은 분명 친절함은 아니었다. 다만 대천사와 같은 잘못을 하지 않으리라는 강렬한 마음이 있었고, 그들의 진정으로 바라던 것은 오로지 진실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진실이 뭐라고. 죄책감이나 복수심이 뭐라고. 대체 그게 뭐라고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슬픔을 분노로 채우며 버텼는지. 그들은 진실을 파헤친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다만 지금 유일한 후회가 되는 것은, 그들은 더 이상 사랑하는 가족의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긴 시간 동안 한 번이라도 가족을 더 떠올려볼 것을, 하고 생각해도 현실은 그저 잔혹하게 흘러갈 뿐이었다.
오래도록 살아가면서 생긴 유일한 두려움이란 그저 과거의 추억이 흐려지는 것뿐이라.
"루나..."
리나는, 그러니까, 비아체는 오래도록 눈에 담고 있던 동생의 유골함을 또다시 눈에 담았다. 시선이 손길이었다면 유골함은 진즉에 닳아 없어졌을 것이다. 비아체는 제 품에 들어올 법한 작은 무덤 앞에서 하염없이 말을 이어간다. 진실을 알았어. 신에 대한 것을 알았어. 비극의 시작을 알았어. 그런데도 나는 그들을 단죄하지 못했어. 그들은, 네가 사랑했던 나를 닮아 있어서...
비아체는 아주 오랜만에 울었다. 깊은 밤이 다 지나가도록 울었다. 그 서글픔이 어찌나 비통했는지 하늘에서는 또 비가 쏟아지더라. 그것이 마치 제 동생의 눈물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미안해 또 울었다. 며칠 밤낮을 울다가, 미친 듯이 웃다가, 또 울다가... 겨우 눈물을 그치고 고개를 들었다. 슬픔에 다 씻겨 내려가버릴 것만 같았으나 유골함은 그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었다. 리나는 생각한다. 비아체 체시드퀴아라는 아무런 힘도 없는 이름을 버리고 루나가, 루아체가 지어준 리나라는 이름을 선택한 순간을. 그때 루나의 표정이 어땠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지금에야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 그때의 루아체는 조금 슬펐던 것 같았다. 비아체라는 존재가 루아체보다 가볍다는 것을 증명받은 것만 같다고 느꼈을 것이다. 루아체는 다정하니까. 다정한 아이였으니까...
눈물 가득 머금은 한숨을 내쉰다. 비탄에 며칠 밤낮을 전쟁터에 떠돌며 싸우던 것보다 더 힘들었다. 동생을 잃었다는 비탄이 모든 감각이 마비되었지만 지금은 모든 감각이 또렷했다. 문득 시선이 창문 밖으로 향했다. 루아체를 만나러 가는 길의 하늘도 이토록 푸르렀다. 비아체는 몸을 일으켰다. 품에 유골함을 안아 들고, 집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발길의 끝에는 푸름 깃든 들판이 있었다. 거기에는 비아체의 오랜 친우가 서있었다. 지평선이 보이는 이곳은 언젠가의 비아체와 그의 가족이, 혹은 레이드와 그의 가족이 좋아하던 자유로운 풍경이었을지도 몰랐다.
"먼저 와있었네요."
"오지 않는 줄 알았어."
"그럴 리가요."
비아체는 들판에 피어오른 불꽃을 바라본다. 오로지 죽은 것만을 태우는 불꽃 안에 비아체는 루아체의 재를 뿌린다. 한때는 몸을 이루던 아주 작은 것들이 불에 타 없어진다. 비아체는 또 생각했다. 사랑했던 가족을 떠나보내는 것도, 친우를 만난 것도, 진실을 알게 된 것도 모두 푸른 하늘 아래에서였다. 짓무른 눈가가 햇살을 받아 따끔거렸다. 어여쁜 날 사라진 내 동생. 나는 또 너를 어여쁜 날에 놓아주었다.
"내 동생은 천국에 갔겠죠."
"그렇겠지."
"우리도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 글쎄."
"믿어보지 않을래요. 우리의 가족이 떠난 곳으로 우리도 갈 수 있을 거라고."
이 세상에 옳은 것은 없다. 옳은 것이 없으니 틀린 것도 없다. 누군가에게는 절대적인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는 대천사에게 검을 겨눈 반역자이면서도 신실한 천사였으니. 그런 사실 속에서 시선이나 말소리도, 작은 웃음이나 울음도, 그 무엇도 흐르지 않는다.
하지만 침묵은 또한 우리가 평생 흘러온 길이었으니, 우리의 삶은 그저 귀향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