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삶은 비애이다.
이 세상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말이었다.
살아가는 것은 고통이고, 모든 것은 유한함 위에 그려지는 덧없는 이야기였으며,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살아내는 것보다 죽음에 대한 불안이 더 가까운 세상이다. 홀로 걸어가고, 홀로 끝낸다. 어떤 빛나는 순간은 덧없이 진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다른 감정을 품고 살아간다. 그것이 부딪히며 마모되고, 닳아 없어진다. 누군가는 수긍하는 법을 배우고, 누군가는 포기하는 법을 배운다. 또 누군가는 체념하는 법을 배운다. 무언가를 삼키는 삶을 살고, 무언가를 토해내는 삶을 산다.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간다. 삶은 비애였고 덧없음이었다. 그 자체로 헛되고 헛되었다.
헛된 삶에서 의미를 찾는다.
필사적으로 찾은 의미는 쉽게도 사라진다.
우리는 평생 감정을, 숨을 소비하며 살아간다. 누군가가 물어본다. 삶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 황금은 찰나이며 비탄은 영원인 세상에 헛되지 않은 것이 있는지.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야 하는지. 한 사람이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다른 사람의 필사적임을 짓밟는 행위가 아닌지. 모두가 대답하지 못한다. 대답할 말을 고를 수도 없다.
살아가는 사람은 필시 선택한 사람들이다. 이기적임과 이타적임의 기로에서, 자신만을 위한 것과 타인만을 위한 것의 기로에서, 혹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여 살아남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알 필요도 없을 것이다. 개인의 삶이란 쉽게도 말소되는 까닭이다. 그런 까닭 앞에 무릎 꿇는 사람이야말로 사라지는 영웅이 된다. 그러니 살아남은 이들은 필연적으로 영웅이 아니다. 그것이 또 부끄러워 의미를 읊어본다. 사실 의미라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을 모르는 채로.
우리의 삶은 덧없다. 행복은 찰나이다. 비탄은 영원이다. 슬픔은 알기 쉬운 길이고, 희망은 알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의 삶은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 위에 놓여 있다. 지도도, 나침반도 잃은 여행자들이다. 그 누구도 삶의 의미를 알려주지 않는다. 해답은 늘 스스로 찾아야 하건만, 스스로 나아가는 것은 어렵기만 하다.
그럼에도 살아간다.
언제나 지척에 죽음이 있었지만 그것이 슬퍼할 이유가 되지 않았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는 것은 곧 새로운 시작도 있다는 말이었다.
우리의 삶이 온통 비애라고 해도, 온통 절망이라고 해도, 지도도 나침반도 잃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것이 포기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불꽃처럼 타오르며 사라진다. 진리란 없는 이 의미 없는 세상 속에서 헛됨을 기억하며 살아간다. 황금이 영원하지 않대도 우리는 찰나의 빛에 기대 평생을 나아간다.
찰나의 불꽃으로 살아가며 사라지니, 모든 존재는 언젠가 스러질 불쏘시개이며...
끝이 올 때까지 맞서라. 이기적인 선택을 했다면, 혹은 누군가를 죽였다면,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것을 살아서 기억하라. 살아서 속죄하고, 살아서 품어라. 오로지 내뿜으며 스러져라. 모든 헛됨의 끝에서 진실로 회개하라. 그것만이 진정한 참회가 될 테다.
이 세상은 헛되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말라.
그래야만 진정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
우리는 살아간다.
우리는 필사적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비애 이후에 돌아올 기쁨을 안다.
우리는 헛됨마저도 장작으로 삼아 화려하게 타올라 사라질 불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