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것은 죽는다. 그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하지만 마주하지 않는 진실이다. 그 누구도 끝을 상정하지 않았을 때 나는 여기 있노라고 고개를 치켜드는 것이 죽음이고, 또한 끝을 수도 없이 그린 자를 비웃는 것처럼 뒤편에 녹아드는 것도 죽음이다. 죽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오만한 구석이 있었다. 다만 죽음 이후에 돌아오는 것은 재생이라 살아남은 자들은 또 걸어간다. 죽음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나아간다.
오로지 끝을 목도한 이들만이 죽음을 또렷하게 바라본다.
죽음의 물결치는 머리카락은 시들어버린 나뭇잎의 색을 띠고 있었고, 죽음의 눈은 빛바랜 갈색을 가득 담아내고 있었으며, 하얗게 새버린 흰 눈썹은 한밤의 빛을 받아 밝게 빛난다. 눈그늘에는 붉은 점이 나란히 세 개씩 찍혀 있었다. 목에는 검은 가시관의 형태가 흔적처럼 새겨져 있었다. 생보다도 짙은 사의 형태를 나타내는 것처럼, 혹은 영원히 윤회하는 이들의 삶을 나타내는 것처럼. 사람은 영원히 새로운 삶을 얻으나, 세 번의 삶마다 새로운 기회를 얻는다고 했다. 죽음이 보는 이들을 배려하여 변하는 모습은 죽음 그 자체였다.
"너는 어떤 삶을 살아내었니."
반쯤 감은 눈을 떠 죽은 이를 또렷하게 바라본다. 보랏빛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죽음의 목소리는 천사이기도, 악마이기도, 신이기도 했으며... 주마등 같기도 했다. 온기 한 점 없는 나태로운 목소리를 오만하게 내뱉던 상대의 목소리를 담는다. 살아생전 업적을 한가득 쌓아온 이도, 살아생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이도, 부자도, 빈민도, 성실한 신자도, 불신자도 듣는 목소리는 그것 하나였다. 어떤 삶을 살아내었는지, 어떤 후회를 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기쁨이 있었는지. 누구에게나 당연하게 찾아가는 죽음이라는 것은 상대가 누구 건 오만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그랬기에 공평했다. 죽은 이들은 저마다 다른 답을 내놓는다.
후회로 가득한 삶이었어요.
아쉬움이 많은 삶이었어요.
이룬 것 하나 없었어요.
신을 의심했어요.
신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찾을 수 없는 삶이었어요.
하지만, 이 땅에 태어나 슬플 수 있었어요.
이 땅에 태어나 기쁠 수 있었어요.
이게 다 헛되다고 생각했는데, 헛된 건 사실 아무것도 없었어요.
죽음은 회한과 기쁨이 될 말들을 하얀 그림자에 남김없이 녹여낸다. 하얀 속눈썹이 옅게 떨린다. 단단히 굳어있던 입에서는 또 설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 모든 것은 죽음으로써 내려놓고 가길. 죽음은 모든 것에 찾아가는 온전한 마침표이니. 죽음에 안주하고 싶거든 혼마저 다 녹여 새로운 혼의 밑거름이 되도록 하고, 새로운 문장을 시작하고 싶거든 망설이지 말고 걸어가렴. 그리고 나를 찾지 말지어다. 너희를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줄 것은 내 역할이 아니니.
죽음 뒤에는 설원이 펼쳐져 있었다. 설원의 모든 눈은 슬픔이었고, 원망이었고, 후회였고 기쁨이었다. 설원에는 눈이 내린다. 지독하리만치 평온하다. 죽음 이후의 세상이니 당연한 것이었다. 설원에서는 누구라도 전부 녹아내린다. 몸을 뉘어 모든 감정과 함께 남김없이 녹아버린다면 새로운 혼의 밑거름이 될 터였다. 하지만 이 설원의 끝까지 걸어가고자 한다면 새로운 삶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길잡이는 고통이었다. 죽음은 안식이고 삶은 고통이니, 안식에 드는 자는 오롯이 눈이 되어 흩어진다. 눈을 헤치고 나아가는 자는 모든 생의 슬픔을 씻고 새로운 삶을 이어간다. 보랏빛 황혼을 머금은 고통이 손을 내민다. 아주 당연하게도, 생명은 고통이 가장 잘 아는 것이었다. 삶의 끝에는 죽음이 있고, 죽음 너머에는 안식이 있다. 안식 이후에 태어날 혼, 혹은 안식을 거부하는 자는 새로운 삶을 얻는다. 그리고 다시 고통으로써 타올라 죽음을 맞이한다. 이것은 하나의 굴레였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찾아가는 오만하고도 평온한 죽음과 모두에게 공평하게 찾아가는 다정하고도 고통스러운 삶. 그 둘은 끊임없이 맞물려 사람들을 시작으로, 끝으로 이끈다. 사람은 설원 위에 누워 새로운 혼이 탄생하길 염원한다. 사람은 걸어가고 살아간다. 고통을 겪고도 기쁨을 안다. 그렇게 여명이며 황혼이 된다. 그래서 죽음과 고통은 궁금해졌다. 그들이 어디까지 걸어갈지. 혹은, 어디에서 멈출지. 그 불꽃같은 삶이 어디에서 사그라들고, 다시 피어오를지. 사람의 삶이 얼마나 무가치하면서도 얼마나 빛나는지.
설원 속에서는 모든 게 녹아내린다. 사람의 기억과 그 혼마저도 남김없이 녹아내려 새로운 삶의 기반이 된다. 죽음과 고통은 늘 자신의 바람을 그곳에서 읊었다. 그들의 앞날에 안식과 고통이 있기를. 이 목소리마저 녹아내려 흘러가 닿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