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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깊은 수풀의 화살.

by @Zena__aneZ 2024. 5. 29.

셰피아는 항상 단정하게 머리를 묶고 있었다. 중단발의 짧게 흔들리는 머리카락을 보면 그냥 풀고 있는 것도 제법 예쁠 것 같았지만 늘 머리칼을 묶고 있었다. 울창한 숲의 색을 띠고 있는 머리카락, 사막을 닮은 고운 모랫빛의 피부, 그리고 저 너머를 보는 것만 같은 기이한 보랏빛의 눈. 품고 있는 분위기도 굉장히 독특해 사람들의 관심을 사기에도 적절했다. 그래서 일부러 더 평범한 옷을 입고, 눈에 띄지 않게끔 꾸미지도 않고 다녔다. 사람들과 얽히는 것 자체도 꽤 피곤해했다.

 

"그럼, 이번에는 저 혼자..."

 

셰피아가 먼저 손을 들고 말을 이어갔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혼자 간다고 하는 것을 무모하다고 할법했으나 이 회사 내에서 셰피아의 실력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대표의 허가를 받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겨 일터로 향했다.

셰피아가 하는 일은 치안을 유지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경찰은 아니고, 따지고 본다면 용병에 가까웠다. 이 세상에는 언젠가부터 기이한 일들이 일어난다. 이상현상이 생기기도 하고, 귀신이 나타나기도 하며, 요괴라고 부를 것들이 보이기도 한다. 셰피아가 머무르는 회사는 일반인들이 차마 해결할 수 없는 이상현상을 해결한다. 셰피아는 펜듈럼을 꺼내 손에 들었다. 기이한 녹음 가득한 것이 펜듈럼을 휘감다가 안개처럼 주변에 퍼진다. 셰피아가 가진 능력은 워낙 독특하고 강한 힘이기에 최소한 한 번의 통로를 거쳐야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가볍게 나부끼듯 흔들리던 펜듈럼이 이리저리 요동친다.

 

"..."

 

아무런 말도 없이 잠시 흐름에 집중한다. 셰피아는 눈을 감고 귀를 막는다고 해도 모든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처음부터 품고 있었던 만물 공명이라는 능력의 성질이었다. 곱게 감고 있던 눈이 뜨였다. 온갖 보랏빛이 일렁이던 눈으로 어딘가를 바라본다. 녹음 가득한 기운이 화살처럼 날아가 귀신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귀신의 부정적인 기운이 터져 나왔지만 이런 것들을 오랫동안 상대해 온 셰피아에게는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펜듈럼이 부드럽게 회전한다. 주변에 온통 스산한 기운이 내려앉아 그 무엇도 다가오지 못하게 하며, 이미 지척에 온 귀신을 얼려 부순다. 귀신이 몇 개체가 더 있어요. 간단한 통신으로 말을 전달하니 걱정이 돌아온다. 셰피아는 아주 옅은 미소만 머금으며 충분히 처리하고 돌아갈 수 있다 대답하곤 통신을 종료한다.

펜듈럼이 흔들린다. 녹빛 가득한 기운이 주변을 하릴없이 배회하다 귀신을 찾는 족족 꿰뚫어 없앤다. 한껏 날선 감각이 귀신들을 전부 찢어발기는 것이다. 셰피아는 한 시간가량을 더 서있다가 손에서 펜듈럼을 뺐다. 시각과 청각을 마구 두드리던 자극이 사그라든다. 한번 더 통신을 연결해 모든 이상현상을 해결했다고 연락한다.

 

"수고했어요, 바로 복귀해요."

 

"네, 대표님. 복귀할게요."

 

아, 대표님. 이곳에 기운이 안 좋아서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생길지도 몰라요. 미리 전달해 놓을까요? 그래요, 조금 더 수고해 줘요. 몇 마디 더 나누다가 통신을 종료하고는 짧게 숨을 내쉬며 걸음을 옮긴다. 그러다 머리칼이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것을 느끼고는 짧게 소리를 내었다. 아까 날 선 기운에 머리끈이 또 끊어졌나 보다, 돌아가는 길에 머리끈 하나 사가야겠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마저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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