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최악의 방향으로 변화한다. 그것이 어떤 존재이든 말이다. 모든 사람은 필시 악해지고,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다. 다려는 그러한 악을 피해 가려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살아냄에 따라 감정이 쌓이고, 쌓인 감정에 따라 슬픔과 절망이 쌓인다. 오로지 기쁨으로 살아내는 인간은 없는 것이 당연했다. 평온하게 살기에는 너무나도 힘든 세상이다. 마물이 많은 만큼 위협이 많아진다. 지키기에는 어렵고, 행복하기에는 힘겨운 것이며, 잃기에는 너무나도 쉬운 세상에 비탄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그런 그에게도 가족처럼 아끼던 이들이 있었다. 혈연이 없던 아이들은 한데 모여 혈연보다도 끈끈해졌다. 그들은 함께 살 것을 약속하기도 했고, 누군가가 죽는다면 굳세게 살아가리라 약속했다. 셋은 서로 손을 모아 잡는다. 다려는 그 순간이 아주 먼 일처럼 느껴졌다.
"달아람."
"..."
가족이라고 믿은 이의 처절한 모습을 눈에 담았다. 달아람의 검은 결코 빗나가지 않았다. 마물을 가르기도 하고, 악인을 가르기도 했다. 피가 강처럼 흐른다. 달아람은 피의 강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다려는 그 모습이 끔찍하게도 싫었다. 아무런 의미도 없이, 그저 주어진 대로 행동하는 달아람의 모습이 꼭 마물과도 같아 보여서. 다려는 그런 모습이 그가 도달할 수 있는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그만둬. 무엇을? 무엇이든. 달아람은 다려의 말을 이해했다. 그의 눈에는 제가 미치광이처럼 보였으리라.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제정신으로는 차마 살아낼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만두지 않겠다면? 다려는 이를 악물었다.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의 검이 죄짓는 자들만을 향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것을 모르는 이가 더 많았다. 달처럼 찬란하게 빛나던 녹음 가득한 눈은 탁해진 지 오래였다. 검은색 갓 아래로 장막처럼 드리운 선명한 청색의 천이 너울거린다. 내가 너를 막겠다. 너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동생이었던 이를 위해서. 그 말을 했던 순간에 울고 있었던가. 너울거리는 청색의 천이 밤하늘과 너무나도 잘 어울려서, 그 비통한 표정과 너무 잘 어울려서, 그래서 알 수 없었다.
그 이후로 둘은 가끔 마주쳤다. 달아람의 검이 단죄하는 순간에 다려는 그것을 막아섰다. 둘 모두 검을 다뤘으나 그 실력은 달아람이 한수 위였다. 그럼에도 둘이 호각으로 싸울 수 있었던 것은, 달아람보다 다려가 더 진지하게 임했기 때문이다. 달아람은 다려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으나, 다려는 그를 진심으로 막고 싶었다. 이럴수록 망가지는 것은 그일 뿐이었으니까. 가족을 더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는 욕심도 있었다.
다려의 검이 바닥에 누운 달아람의 머리통 옆에 박혔다. 막겠다고 했잖아. 탁하게 빛나는 완연한 녹빛의 눈과 형형하게 빛나는 연녹빛 눈이 어우러진다. 최악이다. 돌이켜보면, 최악이 아닌 순간이 없었다. 그저 막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물방울이 떨어진다. 비가 내리지 않음에도.
다려는 검을 거두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 이후로 둘이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다려가 철저히 자신을 숨겼기 때문에. 달아람도 그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누구나 혼자 있어야만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았고, 달아람에게는 다려를 다독여줄 정도의 여유도 없었다. 다려는 홀로 서있을 때 비로소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 지도도 나침반도 잃고 떠도는 기분을. 이것이 나의 최악이로구나. 가만히 눈을 감다가 뜬다. 여명이다. 발걸음의 끝에는 그가 있었다. 몇 년 만에 만나는 것임에도, 어째서인지, 몇 년보다도 더 과거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솔아가, 여명을 좋아했었지..."
오랫동안 잊고 있었어. 검은색 갓을 고정하던 끈이 여명의 바람에 풀려버린다. 장막처럼 너울거리던 푸른 천과 함께 바닥에 떨어진다. 몇 년 동안 그려보던 과거의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날 것 같더라. 바람에 옷자락이 흩날리고, 둘은 오래전 동생과 함께 그랬던 것처럼 따뜻한 온기를 나누었다. 보고 싶었어, 내 가족. 아람은 손으로 느릿하게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너무 오랫동안 혼자 두어서 미안해.
모든 사람은 최악의 방향으로 나아가나, 사람이기에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그렇게 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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