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 선물

인간다운, 인간적인.

@Zena__aneZ 2024. 5. 15. 21:18

루이셸은 어떤 사람을 바라본다. 그 사람은 열망의 불꽃보다도 짙은 붉은빛을 머금고 있었지만 그것은 어쩐지 더없이 차가워 보였다. 누군가는 그것을 슬픔이라고 부를 것만 같았다. 혹은 잔인함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루이셸은 친절한 미소를 띠고 말을 건넨다. 안녕하세요, 길을 잃으셨나요?

루이셸은 그 사람이 다른 세상에서 온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언젠가의 미래에서, 과거에서, 어딘가에 닿았던 인연이 이런 슬픔 가득한 대지까지 흘러온다는 것이 통탄할 따름이었다. 루이셸은 분명 다정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지만 대화 상대로는 그리 좋지 않았다. 온통 수단으로써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마음의 여유라고 할 법한 것이 없었다. 수단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여유가 아니었다. 오로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마음뿐이었다.

 

"그대가 믿는 자신의 뜻을 왜, 어떻게 확신하지?"

 

루이셸은 그 말에 잠시 고민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주제이거니와, 자신이 어떻게 생각한대도 달라질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루이셸은 누군가의 원망을 받아내는 것을 영 버거워했다. 다른 사람들을 지킬 힘도 있었다. 힘이 있으면서도 모른 체하면 원망이 쌓인다. 그게 싫고 무서웠다. 루이셸이 필사적으로 싸우는 이유는, 오로지... 타인의 의지로 살아가는 게 익숙해서요. 그래, 그거다. 타의에 기대 살아가는 게 익숙하고, 누군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게 익숙하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생존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되었다. 루이셸은 살고 싶었다. 원망을 받지 않고, 죄책감 갖지 않고 살고 싶었다. 그래서 타의에 기대 살아간다. 누군가는 그런 모습을 보고 영웅이라고 칭하겠지만, 또 누군가는 그런 모습을 바보 같다고 할지도 모른다. 루이셸은 제 앞의 사람의 표정을 살핀다. 그것은 질책하는 것도 아니고, 슬퍼하는 것도 아니고... 아주 약간의, 동질감. 혹은 언젠가의 애달픔이었다. 찰나에 스쳐 지나간 표정이 지나치게도 깊은 흔적을 남긴다. 그것은 상흔 같기도 했고, 눈물 같기도 했으며... 그 사람은 표정을 완전히 갈무리하고는, 아까 지었던 것 같은 표정을 짓고 말을 이어간다.

 

"그렇다면 자신을 버리는 것이냐?"

 

루이셸은 그 말에 긍정했다. 상대의 표정이 변해간다. 굳이 따져보자면 확실히 나쁜 쪽이었다. 이런 대화를 달가워할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 세상은 영웅의 이면보다도 더 밝은 모습을 원했다. 서서히 허물어져가는 세상이었다. 그런 세상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 어느 누가 희망의 나약함을 보고 싶어 할까. 하지만 그 사람은 루이셸을 하나의 수단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적어도 루이셸은 그렇게 느꼈다. 아까 느꼈던 기묘한 표정이 떠올라 말을 이어간다. 당신의 삶은 슬펐나요? 그 말이 흐르자 표정이 묘하게 구겨진다. 루이셸은 그게 어떤 감정 때문인지 잘 몰랐다. 단지, 이 말이 상대에게 꽤나 거슬렸구나,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상대는 또 말을 이어간다. 자신의 운명을 타인에게 맡기고 스스로 인형행세를 하는 거냐고. 그건 약간의 분노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원망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며, 비단 자신뿐만이 아니라 언젠가의 누군가에게 하는 말 같기도 했다.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게 어떤 걸까요?"

 

루이셸은 늘 생각한다.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에는 특별함이 필요한가? 항상 남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만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이 세상의 모든 생각을 가진 존재들은 각자의 특별함으로 삶의 주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며 살고 있다면, 모두의 해답은 다르지 않을까? 그런 끝없는 질문들 위로 자신의 해답을 새긴다.

 

"누군가는 홀로 걸어가는 것이라고 할 거예요. 누군가는 선택을 책임지는 것이라고 하겠죠. 또한 누군가는 생의 슬픔을 안다는 것이 삶의 주인이 되는 길이라고 할지도 몰라요. 그 외에도 수백 가지의 대답이 있을 거고요."

 

모두가 고통받는 세상이었다. 모두가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살아가는 세상이었다. 제 앞의 사람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루이셸은 모른다. 그러니 그 사람도 루이셸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모를 것이다. 아무리 말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고, 그것을 비난하거나 슬퍼하고 분개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모두가 다른 해답을 품고 살아간다. 각자의 이유로 고통받는다. 저도 그랬어요. 그래서 고통을 이겨내려고 타의에 휘둘리기로 결심했어요. 그것만큼은 분명한 내 자의였어요. 당신도 분명 당신만의 해답이 있겠죠. 그것을 굳이 이해할 필요는 없어요. 저도, 당신도. 그저 쌓아온 해답대로 살면 그만이니까요.

살아내는 것만이 가장 진실된 인간적인 행위였다.

 

"당신이 살아낸 방식은 어땠나요?"

 

루이셸은 그 해답을 듣지 못했다. 예기치 않게 흘러들어온 인연은 다시 흘러가고 만 탓이었다. 업화의 불꽃만큼 붉은 이가 부디 떳떳한 삶을 살기를. 그렇게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