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직하는 것.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고이 간직하고 싶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소망이었다. 다만 영원은 그 어디에도 없고, 시간은 야속하며, 어리던 것은 훌쩍 커버려 새로운 연을 만나 손을 맞잡으니 그것만큼 기쁜 일이 또 어디 있겠느냐고. 그래서 후회가 들었다. 그저 기뻐하지만 말 것을. 아비 손 놓고 앞으로 씩씩하게 걸어가던 아이가 영영 사라져 버린 순간을 기억한다. 영원 따위 존재하지 않는 이 세상에서 제 영원한 아이가 남긴 생명의 흔적이 소중했다. 하지만 아가야, 네가 네 아가를 사랑했던 만큼 나도 너를 사랑했노라고... 다 사라진 애틋한 것아. 네 흔적을 반드시 지키겠다.
하지만 이것은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갓난아기의 몸이 너무나도 약했다. 훌훌 떠난 제 작은 아이보다도 더. 이 작은 흔적마저 놓칠 수는 없었다. 그랬기에 상실의 병증을 떨쳐내려 필사적이었다. 필사적임은 이윽고 습관이 되었고, 또 다른 병증이 되었다. 강하게 쥐면 부서질까 봐, 무너질까 봐. 혹은, 또다시 상실이 찾아올까 봐.
"아이가 참 빨리 크지 않습니까."
"눈 깜빡하면 커있지. 이젠 다 늙었나 싶다."
늙기야 전부터 늙었지요. 버텨온 시간이 얼만데. 하하... 웃음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적막했던 것에서는 흔한 수풀의 향기조차 나지 않았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죽음이 고요하다는 말을 더는 이해할 수 없게 된 이들은 평범한 삶을 살다가도 불현듯 죽음의 향기를 맡고는 했다. 아, 이 향기는 어설픈 비탄을 담고 있다. 어정쩡한 자세로 온 시간을 버티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더 빨리 닳게 만들고 만다. 짊어질 것이 많아서. 수없이 반복한 실험으로 늙지 못하고 닳아가기만 하는 자의 얼굴에도 주름이 생겼고, 철저히 존재를 가려가는 자의 목소리에도 어렴풋한 서리가 끼었다. 시간이 지났다는 증거겠거니 싶었다. 시간의 흐름은 막을 수 없으니, 아늑한 집 안에만 머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며...
"안전하게 지키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자유롭게 뛰노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 않습니까."
"... 이제는 문을 열어 두어야 할 때겠지."
인생이 참,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지요. 그래도 작은 웃음을 보면... 힘이 나. 언제나 그랬지. 그 작은 게... 건조하고 메마른, 수풀의 향기조차 나지 않던 웃음 뒤에는 다정함 깃든 것이 스친다. 그 애틋한 마음이 햇살을 받아 반질반질 빛난다. 어째서 지키고 싶은 것과 자유로운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은 영원히 양립하는가? 그럼에도 영원한 약속을 지키고자 위협으로 내던지는 것은 미련인지 회한인지, 혹은 그 어떤 것도 아닌 설움인지, 그리움인지... 녹음 짙푸른 세상에서는 모든 흘러가버린 것들로 빚어진 바람의 향기가 난다. 문을 열어두고, 손을 잡아서 이끌어주고, 또다시 그 과정을 감내하기에는 너무 늙었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래도 아가, 네 흔적을 내가 망칠 수는 없겠지. 수풀의 향기가 거세고, 억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