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남자애, 죽은 거 아니지?
검은색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이 감옥 문 너머의 한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치 간식을 고르는 것만큼 가벼운 말투였기에 다른 이가 들었다면 그저 장난으로 한 말인 줄 알 것이다. 어찌 본다면 장난식으로 한 말이 맞았다. 왜냐면, 그들은 아이를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죽이지 않을 테니까. 잔인하게도.
"설마, 아직 안 죽었어. 안 죽을 거라는 걸 알잖아?"
"그래도 말이지, 너무 죽은듯이 얌전히 있으니까. 조용해서 좋긴 한데."
"약이랑 흑마법을 같이 쓰니까 어쩔 수 없지."
그런 대화를 이어가던 이들은 가볍게 웃었다. 사람의 목숨이 그렇게 가벼운 이들이었다. 감옥 안에서 그 대화를 듣던 아이는 멍하게 눈을 깜빡였다. 생기 없는 붉은빛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톡, 톡. 그런 소리를 내며 바닥에 부딪혀 데구루루 굴러갔다. 어느새 바닥에는 보석들이 잔뜩 굴러다니고 있었다.
"마법을 담는 보석을 만들어내는 체질이라니, 딱 적당해. 신성이나 마나를 담기에 딱 적절한 보석이잖아."
"그냥 보석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기도 하지. 그러니까 구매자들이 차고 넘치는 거고."
그들은 킥킥 웃으며 대화했다. 아이는 힘없이 눈만 깜빡였다. 딱 적당하다는 말에는 공감했다. 딱 적당하게 절망적인 건 맞으니까. 아이는 그리 생각하며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그들이 말한 대로, 아이는 '보석 눈물'이라고 불리는 것을 떨군다. 흘러 떨어진 눈물이 보석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런 체질을 타고나는 것은 필히 재앙이다. 그 보석을 탐내는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으니까. 그런 보석은 값비싸게 쳐주었고, 무엇보다 마법적인 연구를 하기에 딱 알맞은 보석이었다. 그렇게 귀한 보석을 흘리는 아이들은 제국에서 보호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린 나이에 납치되어 보석을 갈취당하는 일이 더 많았다. 참 잔인한 운명이 아닐 수 없었다.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들은 무어라 더 떠들며 감옥 안을 둘러보다 복도를 나섰다. 이제는 정적만이 감돈다. 복도의 문이 열렸다 닫힘에 따라 스산한 바람이 불어온다. 그 스산한 바람에, 아이의 밀빛 머리카락이 옅게 흔들렸다.
"..."
아이는 멍한 눈으로 감옥의 문을 바라봤다. 눈에서는 자꾸 눈물이 떨어진다. 비정상적으로 많이 울게 된다. 이것은 그 납치범들, 검은 로브를 입은 사람들의 짓이었다. 어떤 특수한 방법을 거친 약물을 주입하자, 약물의 독으로 몸 이곳저곳이 아프면서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리게 된다. 약물의 독에 몸이 서서히 병들어가면 그 독을 흑마법으로 없앤다. 독을 독으로 막는 꼴이다.
아이는 자신의 마른 손으로 바닥을 더듬어본다. 차가운 돌의 감촉이 느껴진다. 이곳에 갇힌 이후로, 차가운 돌의 감촉을 느끼는 것이 아이에게 유일한 위로가 되었다. 눈앞이 흐리다. 하지만, 그들의 말대로 아직 죽지는 않을 것이다. 보석을 만들어내는 아이는 귀하니까. 죽이지 않을 거야. 이렇게 살아가는 것에 의미가 있을까? 죽고 나면 살았을 때 지은 죄에 대한 벌을 받는다고 하던데, 어쩌면 그 벌을 받고 있는 건 아닐까? 아이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의미없는 생각들이 줄지어 이어갈 때, 문득 공간에 어떠한 낯선 힘이 침투하는 것을 느꼈다. 아이는 이곳에 갇힌 이래로 처음 일어나는 변화에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흐릿한 시야가 조금 또렷해졌다. 무어라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향이 공간을 지배한다. 낯선 향이지만 두렵지 않다. 어째서 두렵지 않은가, 라는 질문에는 적절한 답을 내놓을 수 없다. 단지 그렇게 느낄 뿐이었다.
그렇게 느릿하게, 또는 빠르게 생각을 이어갈 때- 순식간에 굉음이 스쳐 지나가고, 천장 쪽에서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아이는 강렬한 햇살에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 괜찮으십니까."
낯선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랜 시간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온 아이는 알 수 있다. 해치고자 하는 의지는 단 하나도 느껴지지 않아. 아이는 그 목소리에 따라 조심히 눈을 떴다. 언제나 굳게 닫혀있던 감옥의 문은 조각나 바닥을 굴러다니고, 부서져 내린 감옥의 천장에서는 강렬한 푸른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말을 걸어온 사람은 온통 검푸른 빛의 갑옷을 입고 있었다. 들고 있는 검에는 수풀의 녹음을 머금은 빛이 흐른다. 기사에게서는 황금빛이 일렁거린다. 마치 세상의 모든 부정을 다 태워버릴 것만 같은 황금의 빛은 푸른 하늘 아래에서 춤춘다. 그 비현실적인 풍경이 지독하게도 잘 어울렸다.
기사가 쓰는 모든 힘은 전부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는데, 이상하게 푸르게 빛난다고 느껴졌다. 황금이 푸름 아래 춤추며, 푸름은 기사의 곁에서 춤춘다. 참 이상한 모습인데도 싫지 않았다.
기사의 손에 들린 칼은 검은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이내 기사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이는 무언가에 홀린 듯 손을 뻗었다. 상대가 어떤 존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이 지독한 삶의 구원자였으니까. 그것으로 다 되었다.
기사는 아이의 뻗은 손길에 화답하듯 아이의 발목을 구속하던 족쇄를 황금빛의 기운으로 뚝 끊어낸다. 무겁게 짓누르던 무게감이 사라진다. 기사는 아이를 가볍게 안아 들었다. 순식간에 높아지는 시야에, 아이는 눈을 질끈 감고는 기사에게 꼭 안긴다. 조심히 고개를 들어 그 기사를 바라보았다. 가까이서 본 기사의 눈은 그가 입고 있는 갑옷의 색처럼, 깊은 밤바다의 푸른빛을 띠었다. 아이가 가장 두려워하는 어둠을 담았으나, 어째서일까. 아이는 무심코, 그 검푸른 눈이 자신이 품은 고통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부드럽고 강인한 목소리. 그런 목소리가 멋진 겉모습과 꼭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멍하니 생각하다 퍼뜩 정신 차린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 보였다.
"기, 기억나지 않아요... 이름도, 나이도.. 모르겠어요..."
기사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시선을 아이에게 향했다. 이윽고 마주한 시선에서는 아이는 처음 마주한 이가 신기한 것 같은 눈빛이면서도, 아직 두려움이 남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것에 별말 않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지금까지 오랜 시간 동안 이용당해왔을 텐데, 더 크게 두려워하지 않고 대답해주는 것이 고맙기만 했다. 마음 한편으로는 아이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가둔 이들을 향한 분노가 일렁이지만 그것은 철저히 숨긴 채로.
기사는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다,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이는 그것에 잠시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봤다. 푸른 하늘이 눈 안을 가득 메우며, 그와 함께 숲의 푸름도 보였다. 아까 기사가 들고 있던 검에 흐르던 녹빛이야. 아이의 고운 붉은빛의 눈에 녹음 가득한 빛이 들어와, 서서히 반짝였다.
".. 그렇다면, 루베오라는 이름은 어떻겠습니까."
기사는 문득 말을 꺼냈다. 루베오의 뜻은 고대어로 '붉다'는 뜻이다. 기사가 볼 때는, 아이의 눈은 차분하게 내려앉는 붉은빛의 눈이었다. 세상의 그 어떤 붉은빛을 지닌 것보다 예쁜 빛을 띄었다.
아이는 그 이름을 듣곤 눈을 크게 뜨고, 멍한 표정으로 기사를 바라보았다. 루베오, 루베오.. 어쩌면 세상에서 처음 가져보는 이름일지도 모른다. 꼭 꿈만 같은 상황에,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 루베오, 혹시 이곳에 오기 전에 대한 기억은 있습니까."
"그, 그게.. 기억이, 아무것도 나지 않아요... 어떤, 사람들이.. 약을 준 것부터.. 기억나서..."
"... 그렇다면, 갈 곳이 없겠군요. 괜찮다면 저와 함께 가시겠습니까. 안전한 곳을 알고 있습니다."
루베오는 기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품에 꼭 안겼다. 아이는 기사가 두려우면서도,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처음으로 찾아온 기적 같은 구원이었으니까. 아마 이 순간은, 어떤 일이 있어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가, 같이.. 갈래요..."
"좋습니다, 루베오. 그 안전한 곳까지 같이 가도록 하죠. 그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루베오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이게 꿈이라면 부디, 깨지 않기를 바라면서.
푸름을 가득 머금은 바람에 밀빛의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