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분류 전체보기373

눈물의 시대 - 흰 꿈 사람들은 어느 날부터 지독한 악몽을 꾸었다. 단 몇 명이 하루나 이틀 정도 꿈을 꾸는 것이었으면 이 이야기를 시작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긴 시간 동안 집단적으로, 그 자신에게 있어 가장 질 나쁘고 끔찍한 꿈을 꾸고 있었다. 그들은 머지않아 이것이 모두가 꾸는 꿈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국가에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 악몽을 꾸고 있다는 것도 알았고, 악몽을 꿀 때마다 고유 능력이 약해져 갔다는 것도 알았다. 사고율이 높아졌다. 교통사고나 산업피해는 말할 것도 없었다. 폭행이나 살인과 같은 범죄율도 치솟았다. 악몽이 현실에도 도래한 것만 같았다. 사이비 종교가 힘을 얻고, 기댈 곳이 사라져 가는 이 세상은 거의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비탄했다. 눈물을 흘.. 2024. 12. 2.
암야의 끝자락. 남부에서는 기괴한 평온함과 느릿한 절망이 늘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숨이 끊어진 육신을 정성껏 약품처리해 움직이게 하는 귀찮은 짓을 하는 이유는 별 것 없었다. 맞서는 이들의 전의를 상실하게 하기도 했고, 버림 패로 쓰기에 딱 적당했다. 자아도 뭣도 없으니까. 그저 지시한 것만 행하는 로봇과 다를 것이 없었다. 남부를 고향으로 두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로봇을 쓰는 것보다 훨씬 더 악질적인 것 말이다.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은 시체를 조종하는 것이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보다 더 경악스러운 일이 되었다. 무엇이, 어떻게 경악스러우냐 묻는다면 시체를 이용해먹는 과정이다. 죽은 이에 대한 존중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흡사 지옥도와 같은 광경.살아있을 적 망가진 어깨와 .. 2024. 11. 28.
7일 편지 - 리츠 (7) 2024. 11. 27.
7일 편지- 리츠 (6) 2024. 11. 26.
암야의 왈츠. 연화는 남부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남부의 따스한 햇살이 빚어놓은 것만 같던 사람이었으나 남부의 소란과 침묵을 생각하노라면 그것만큼 부자연스러운 것도 없었다. 연화는 다정함을 알았고, 사랑을 알았으며, 아낌을 알았다. 그것과 함께 피와 폭력을 알았으니, 부당함에 맞서는 것이야말로 그의 적성에 꼭 맞았으리라. 맑은 밀색 머리카락이 나부끼는 것이 느껴진다. 시원스럽게 흐드러진 것이 꽃잎 같더라.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아이들. 심장을 가득 채우는 꽃내음. 사랑들아, 이리로 와. 애정 한 움큼 집어넣은 모든 말이 화사했다. 어린아이들을 품에 가득 끌어안고 웃는 모습은 어떤 것보다도 아름다웠다. 손에 닿는 보들보들한 머리카락을 한껏 정성스럽게 정리해 주며 웃는 것이 마치 동화에나 나올법한 천사와 어린.. 2024. 11. 26.
7일 편지 - 리츠 (5) 2024. 11. 25.
마음정리. 너는 그렇게 다 남기고 떠나서 정리는 온전히 내 몫이 되었다. 왜 이렇게 어지르기만 해 놓고 가는 건지 알 수도 없다. 들이켜는 숨에서는 물기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건 상실의 메마름이다. 할 수만 있다면 온통 쉬고 싶다. 이 어질러진 마음의 방에 하염없이 누워서 쉬고 싶었다. 누군가를 놓아주는 것을 정리한다고 한다. 나는 늘 정리를 어려워했고, 너는 늘 정리를 잘했는데. 그렇다면 떠나는 건 내가 해야 맞는 게 아니었을까? 내가 가면 너는 내 흔적을 차곡차곡 잘 정리했을 텐데.네 습관을 따라 은색 열쇠는 항상 오른편에, 동색 열쇠는 항상 왼편에 두었다. 가끔 반대로 놓으면 잘못 놓았다며 웃는 소리를 내는 네가 좋아 이따금 반대로 두는 실수를 저질렀는데. 내 사소한 습관, 모든 정리정돈에.. 2024. 11. 24.
7일 편지- 리츠 (4) 2024. 11. 23.
원망과 그리움.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모호해서, 쉽게 혼동하곤 한다. 혹은 영원한 것은 없으니 아주 길고, 길게 늘어져서 뒤섞이고 만다고... 그러니 그리움과 원망은 아주 가깝게, 정답게 부둥켜안고 있으니 하나를 품게 된다면 다른 하나도 가지고 마는 것이다. 헬렌 리시안셔스는 그리움을 느낄 상대도, 원망을 느낄 상대도 없었기 때문에 둘을 더 쉽게 혼동했다. 어쩌면 둘 다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야, 그럴 것이 아닌가? 가장 원하던 순간에, 가장 원하던 가족이라는 존재에게서 떨어져 나왔으니... 사실은 그리움보다도 원망이 더 잘 어울렸다. 하지만 온전히 원망하기에는 헬렌 리시안셔스라는 존재는 너무나도 다정했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다정함이 가족에게도 적용된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 있어 .. 2024. 11. 20.
7일 편지- 리츠 (3) 2024. 1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