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 연교17 원망의 뜻은 그저 그리움이라. 파랗게 타오르던 하늘이 잿더미 속의 선명한 노랑이 되어가는 순간을 안다. 타오른다기에는 적막하던 고요 어린 노을이 단단해진 땅 위로 내려앉는다. 흰 구름이 혼처럼 떠돌았고, 평생 이름으로 부르지 못한 당신네들은 죽어서도 이름이 없었다. 여전하게도. 랑은 알면서도 침잠하는 것들의 이름을 알았다. 손에 쥐어진 기억은 데일 듯 뜨거우면서도 차갑게 식어가 이 미적지근한 피부는 노랑 속에 숨어든 어둠 탓에 화상과 동상이 오가는 것처럼 검푸르게 물들었다. 하늘의 그림자, 서서히 어두워지는 노랑이 세상을 푸르게 만든다니. 아이러니가 따로 없다.랑은 손에 쥐어진 것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이름 없는 묘비 앞에 앉았다. 술잔 하나와 술병 하나를 내려두었다. 이름이 없는 것은 앞으로도 영원히 이름이 없다. 과거에서 멈춘 것.. 2025. 2. 2. 그리움은 차가움. 앨리스 디샤는 굉장히 냉소적인 정령이었다. 머금고 있는 색만큼은 굉장히 온화하고 따뜻했으나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냉소적인 표정은 이질적이기까지 했다. 장미를 씻어낸 물에 담가둔 것만 같은 연분홍빛 머리카락은 허리까지 내려오기에는 조금 모자라고, 흰 속눈썹 안에 자리 잡은 오묘한 빛깔의 눈은 구슬처럼 반질반질 빛났다. 쉬이 다가갈 수 없는 특유의 분위기는 봄날의 따사로움이 아니라 모든 것이 얼어붙고 마는 차가운 겨울을 닮아 있었다. 자연에서 탄생한 자는 그저 아름답기만 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주 매서웠고, 혼란스러우며, 다정한 만큼 매정하기도 했다. 미적지근한 바람이 앨리스를 스쳐 지나가 저 멀리 향했다. 겨울꽃 향기가 지천에 깔린다. 차갑고 고요한 향기에 피부가 따끔거릴 것만 같았다. 나는 사람을 좋아.. 2025. 1. 22. 안녕, 머지않아 다시 만날 사람. 밤하늘보다도 짙푸른 짧은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바람이 불어옴에 따라 모든 청색이 흔들린다. 은하는 가만히 숨을 내쉰다. 은하를 바라보던 다른 이가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낸다. 그를 가만히 보다가 가만히 고개를 기울인다. 뭘 그리 걱정하고 있습니까? 그 질문에 한참을 머뭇거리던 이는 애써 말을 이어간다. 제가 은하 님처럼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요. 이제 은하 님은 은퇴하고, 제가 오롯이 한 지역의 책임자로 남는 건데... 그게 걱정돼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없다는 건 알지만... 흐린 말끝을 듣곤 은하는 픽, 하는 웃음을 흘린다. "제가 다음 자리를 맡긴 건 당신이 유능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잘 해왔잖아요." "그래도요. 은하 님이 없었으면..."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실수할 수.. 2024. 7. 28. 슬픔에 절망과 환희를. 영원히 내릴 것 같은 비가 그친다. 하루 내리 쏟아지던 비가 그치니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어온다. 디안 리오네트의 고향에는 비가 잘 내리지 않았다. 잠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새에 비가 그렇게 쏟아질 줄 누가 알았을까. 디안은 아주 오랜만에 검은 하늘을 보고 있었다. 하나의 달과 수많은 별이 휘영청 떠서 아스라이 빛난다. 겨울의 하늘과는 다르게, 흐릿하게 반짝였다. 아직도 먹구름이 흘러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눈에 담을 여유가 없는 것인지 본인도 몰랐다. 한숨을 내쉰다. 하얀 입김이 나오지 않는다. 겨울향기 가득한 고향에서는 모든 숨에 입김이 흩어지는 곳이었다. 오로지 죽은 사람에게만 입김이라고 할 것이 흘러나오지 않는다. 망할, 왜 또 그저 그런 기억이 떠오르는 건지. 입안에서 욕설을 잘게 짓.. 2024. 5. 2. 선의 강박관념. 그는 언제나 해답 없는 고민을 했다. 지독할 정도로 해답이 없는 고민은 종종 쓸데없는 고민으로 취급이 되곤 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그가 하는 고민은 일종의 쓸데없는 고민일 테다. 불현듯 생각을 이어나가길 꺼려하는 -싫어한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생각났다. 그것에 저도 모르게 침체되는 기분이었다. 가족을 사랑해야 하고, 아껴주어야 하고, 그리고, 또... 집어치워라. 그런 얄팍한 말들로 달래질 상황도, 마음도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끈질기게도 붙잡고 마는 고민은 그가 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어쩌면 착함을 강요받았고, 스스로도 그 모습을 지키고 싶어 했다. 일종의 강박관념이다. "..." 착한 게 나쁜 게 아니잖아요. 스스로 내뱉은 말이 지금은 비수로 꽂힌다. 그는 .. 2022. 11. 20. 첫 편지에 대한 답장.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22. 5. 14. 낙원의 곁에.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22. 5. 14. 거짓말은 하나의 희망이 되어.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22. 5. 3. 따뜻한 호의,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22. 4. 25. 예상치 못한,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22. 4. 24.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