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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러 챌린지68

__이 아닌 __이야. 그 사람은 언제나 말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가지고 있는 직업에서의 위치가 위치이니만큼 타인이 쉽게 말을 걸 수도 없었고, 말을 건다고 해도 많은 말을 늘어놓지 않아 몇몇 이들은 그 사람을 답답해하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사람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 중에서는 그 사람을 진실로 싫어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 사람은 어떻게 보아도 참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자신이 있는 자리의 무게를 알고, 신중하게 행동하며, 과감해질 때를 정확하게 알았다. 그래서 언제나 입을 닫은 채 생각하고 인내했다.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 본다면 그 사람은 삼키는 것이 익숙한 것 같았다. 쉽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이나 누군가를 밀어내는 말, 타인의 사소한 실수라던가,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것까지. 그 사람이 기어이 삼키고 마는 것 .. 2023. 1. 14.
사라진, 사라질 고향. 그러니 나는 궁금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의 고향은 왜 죽어가는가, 어째서 죽어가는가. 죽어간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죽어가는 고향을 무슨 심정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해답이 너무나도 명확한 말이 또렷한 질문이 될 때, 나는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까. 방독면을 쓰는 것이 유독 갑갑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가 온다면, 플로드는 습관적으로 걸음을 도시가 잘 보이는 절벽 위로 걸음을 옮긴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다, 손끝으로 방독면을 이리저리 매만진다. 온종일 비가 쏟아지는 세상이다. 그것뿐만 아니라 돌연변이와 같은- 공격성이 높은 것도 있다. 이 세상은 너무나도 많은 것이 너무나도 쉽게 무너져 내린다. 문득, 얼굴을 가로지르는 흉터가 욱신거린다. 수많은 빗방울로 짓무른 땅 위에 서서 저 아래를.. 2022. 12. 29.
이 꿈이 현실이길. P는 언제나 여행하며 산다. 수많은 곳을 여행하며, 하염없이 떠돌아다닌다. 그것이 여행인지, 일종의 도피인지 자신도 모를 일이었다. 여행은 도피를 닮았고, 도피는 여행을 닮았다. 그저 이렇게 하염없이 걷는 것이 제 생의 본질인 것처럼 걸어 나갔다. 그렇게 여행하다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감정이 들이닥치면, P는 깊고 깊은 꿈속에서 바다를 찾는다. 그것은 일종의 습관이었다. 감정의 폭풍으로부터, 그리고 여행할 수밖에 없는 현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탓에 꿈속의 깊은 바다로 향한다. 언젠가 봤던 검푸른 겨울 바다의 앞으로. 그렇게 바다의 앞에 서면 더 갈 곳이 없다. 안타깝게도, 그 사실만이 유일무이한 위안이 되었다. 바다 앞에 서면 더 이상 걸어갈 곳이 없었다. 그러니 머물러도 괜찮을 것만 같아. .. 2022. 10. 17.
거짓말같은 ■■. "..." 한 여성이 오묘한 바이올렛 색의 눈으로 그림을 바라본다. 반파된 벽에 걸려있는 아름다운 바다의 그림. 언뜻 그리움이 담긴 눈으로 보다가, 시선을 돌린 채 걸음을 옮긴다. 대륙과 바다는 언제나 단절된 공간이었고, 그랬기에 육지에서 사는 종족은 바다에 사는 종족을 볼 일이 없었다. 그랬기에 서로에게 어떠한 관심도 두지 않은 채, 각자의 삶을 살아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완전히 분리된 대륙과 바다의 경계는 불분명해지고, 결국 바다의 인류와 대륙의 인류는 만남을 가졌다. 서로 너무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이었기에 조화보다는 다시금 단절을 택했고, 그렇게 단절된 채로 평화롭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래야만 했다. 계속, 그래야만 했는데.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 미지의 영역에.. 2022. 9.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