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381 멀리 가는 편지. 안녕, 잘 지내고 있어?이곳은 지금 눈이 오고 있어.눈이 귀한 곳인데, 신기하지. 오랜만에 내리는 눈인 것 같아.너와 같이 보면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도 해 봐. 지금 이곳은 겨울의 찬 향기가 가득해.눈이 많이 오는데, 그 사이로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와.맑게 웃어 보이던 네 생각이 많이 나더라. 나는 잘 지내고 있어.내 친구도, 가족도 잘 지내고 있어. 우리는 눈물로 보내지 않아.울지 못하는 몸을 가진다는 건 가끔, 아주 슬프기도 하지만...동시에, 다행이다 싶기도 해.네 앞에서 울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다가네 눈물을 지켜보고 같이 울어줄 수 없어서...그게 유일한 슬픔이었어. 정말이야. 너와 함께 있었던 시간에 행복만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오로지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았던 이 감정이 나를.. 2025. 3. 18. 다정에 익숙해져 속아버린 셀린은 다정함을 몰랐다. 다정함이라고는 없는 삶의 한복판에 놓인 탓이었다. 메마르고 건조한 삶에 한 줌의 안온도 없이, 그저 살아남는 법을 익히는 것이 전부였다. 쉬는 법 따위 익히지 않았다. 애초에 그것의 이름도 몰랐다. 주어진 대로 압살하고 살아남는다. 이 온기 없는 땅에서 살아남기만 하는 것이 괴로웠던가? 애초에 괴로움이라는 단어를 익히지도 않고 그것으로 점철된 것이었는데, 그것을 깨달을 수가 있을까? 이름을 몰라도 알 수 있는 삶이란 얼마나 괴롭고... 하잘것없는지. 제 숨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이명이 길게 이어지다가, 곧 뒤집어진 시야가 바로잡힌다. 상처 투성이의 손이 뻣뻣하다. 곧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때, 눈앞의 풍경을 바라본다. 처음 보는 풍경이 펼쳐져 있다. 책이나 영상에서만 보던.. 2025. 3. 18. 자연의 공허 자연이 아름다운 곳에는 소름 끼치는 침묵이 만연했다. 선명한 붉은 물이 바다처럼 차올라 물결친다. 자연의 한가운데에선 피비린내가 났다. 사람이 죽고, 동물들이 죽어간다. 수많은 생명이 태어나지만 머지않아 자연의 밑거름이 된다. 살아남은 극소수의 존재만이 침묵을 지키며 조용히 머무른다. 비명조차 없는 죽음과 자연의 땅은 울적한 적요만이 존재했다. 이 대지는 그 어떤 것도 긍정하지 않았다. 소리마저 죽어버린 이 땅에선 비명과 자연의 장엄함이 무성하게 피어오른다. 고요는 압살에서 비롯되는 것. 모든 생명이 침묵을 지키자, 비로소 평온함이 밀려온다. 거세게. 모든 것을 부술 것처럼...그리고, 자연에서 비롯된 것. 무서우리만치 강인한 자연 속에서 피어난 존재는 이 대지를 닮은 붉은 눈을 가지고 있다. 침묵하는 .. 2025. 3. 16. 슬픔에 무너지지 말아 클레나는 정 많고 상냥한 사람이었다. 그 다정함에 메말라가면서도 언제나 손을 먼저 뻗을 줄 알았다. 홀로 남겨진 아이를 유일한 가족으로 삼은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도저히 혼자 둘 수 없어서. 지나쳐 가기에는 너무 다정했던 사람이라서. 혹은, 홀로 남은 모습이 마치 자신과 같았기 때문에. 이름도 없이 혼자인 아이에게 죽은 동생의 이름을 준 것은, 그 작은 것이 자꾸만 애틋해진 탓이었다. 클루디, 내 동생. 그 말을 중얼거리며, 겨우 세 살이 넘었을 아이를 품에 끌어안는다. 너를 지켜줄게. 버려진 너를 내 멋대로 나의 가족으로 삼았으니까... 반드시 지켜줄게.클레나는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볕으로 이끌었다. 언제나 안개가 자욱한 곳이었지만 가끔은 해가 떴다. 햇살이 땅을 비춘다. 메말라가던 사람은 클루디가.. 2025. 3. 14. 도시와 지키는 자. 대검을 바닥에 꽂은 채로 서있다가 곧 빼들어선 검에 묻은 피를 대충 털어낸다. 불씨와 바람의 향기가 사라진다. 곧 기지개를 쭉 켜곤 주변을 둘러본다. 적이라고 인식되는 개체는 더 없었다. 뺨에서 무언가 흐르는 느낌이 났다. 코끝에 맴도는 피의 향기에 대충 손등으로 문질러 피를 닦는다. 제법 치열한 전투였다. 빛 한점 들지 않는 지하의 도시는 서늘하기만 했다. 포션병을 열어 포션을 들이켠다. 누군가의 눈물과 잿가루의 맛이 입안을 맴돌다가 미끌거리며 넘어간다. 옆구리에 제법 깊게 박힌 화살을 빼낸다. 패인 상처에서 살이 차오르며, 곧 작은 흉터 하나만을 남긴다. 평소라면 하지 않을 실수를 한 것을 생각한다. 분명 피할 수 있는 범위라고 생각했는데, 전날 온종일 전투로만 보낸 것이 화근이었는지... 뻐근한 어.. 2025. 3. 10. 신록의 애정. 꽃의 용족은 하염없는 감정이 담긴 눈빛으로 생명들을 응시한다. 연약하고 작은 생명, 덧없고 부드러운 생명들을 바라보는 자의 신록을 담아놓은 것만 같은 눈이 선명히 빛난다. 애정이 가득 담긴 눈이 찬란했고, 다정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덧없게도 빛난다. 나의 작은 사랑들아. 태양조차 빛바랠 정도의 선명하고 맑은 미소를 지으며 생명들을 끌어안는다. 다정하고 부드러운 꽃의 용족의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자란 이들은 스스로 걷기 시작한다. 이윽고 날개를 펼쳐 저 멀리 날아간다. 수명 자체가 다른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너무나도 슬픈 일일지도 몰랐지만, 그럼에도 꽃의 용족은 작은 생명들을 애틋하게 여겼다.하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증오에 가까웠을지도 몰랐다. 인간에 의해 소중한 것.. 2025. 3. 7. 이전 1 2 3 4 ··· 6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