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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로그 선물15

懇願. 왜 생에는 불행이 가득할까. 그것은 지우지 못할 절망과 알 수 없는 질문이 되어 내내 심장 한편을 파고들었다. 가장 큰 행운과 가장 큰 불행은 언제나 겹쳐져 있어, 한쪽에 손을 뻗으면 다른 한쪽도 따라오는 것이 당연지사. 어째서? 의문이 길을 잃고 사라진다. 어린 날의 포르투나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무심코 손을 뻗고, 잡고, 슬프게도... 무릎에 까진 상처가 생겼다. 넘어지며 생긴 상처겠거니 했다. 손으로 상처를 벅벅 문지른다. 괜스런 설움에, 혹은 아파서. 입술을 꾹 깨문다. 그때 누군가가 손을 뻗는다. 괜찮아? 꾹 눌러쓴 후드 사이로 보인 별빛 같은 머리카락이, 지나치게도 눈길을 사로잡아서... 말을 건넨 이는 포르투나의 손을 잡고 미약한 치유마법과 보호마법을 함께 걸어준다. 급한 일이 있어서 먼.. 2024. 10. 12.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더라. 바뀌지 않는 것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 이 차가운 눈밭이 혹독하게 춥다는 것, 이 혹한의 추위에서도 빛나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하지만 결국 짓눌려 죽어 차갑게 변해가던 것은 지울 수 없는 과거이자 현재이며 사실이다. 사실의 세계에서는, 그러니 이 차가운 눈 속에서는 꽃이 피어나지 않는다. 아주 연약한 희망으로 연명해 가던 것이 부질없었고 속절없었으며 비참했다. 그럼에도 희망은 굳세고 좋은 사람들은 강인해서. 바뀌지 않는 것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 그들이 좋은 사람들이었다는 것, 그토록 부정하고 싶었던 애정 따위에 목이 멘다는 것, 기어이 사랑으로 살아낼 수밖에 없었던 삶이... 입에서는 기침이 터져 나온다. 속이 쓰리다. 상처가 길게 늘어진다. 그가 걸어온 길처럼 길게도 늘어졌다. 그 흔적이, 상.. 2024. 9. 16.
세상을 나누는 것. 처음, 이 세상의 시작에는 구분이 없었다. 하늘과 땅, 세상의 위와 아래, 천상과 지하는 나뉘어있지 않았다. 나뉘어있다 해도 그것의 사이에는 큰 장벽이 없었다. 머지않아 장벽이 없는 세상에서 괴이와 마수가 넘쳐나 세상을 뒤덮어가는 순간이 왔고, 그들은 대책이 필요했다. 멀지 않은 날, 신의 사자가 인간들의 앞에 섰다. 이 땅을 지키고자 한다면 무기를 들고 깊은 곳으로 괴이를 밀어 넣으세요. 그렇게 세상에서 악한 것이 전부 밀려난다면 깊은 곳을 온전히 봉인하고 지킬 것입니다.모든 것은 인간과 신의 뜻대로. 신의 사자는 태양빛으로 끝단을 물들인 것만 같은 긴 머리칼을 흩날리며 사라졌다. 신의 음성을 들은 사람들은 저마다 무기를 들었고, 악한 것에 대항했다. 때로는 무기의 끝이 같은 인간을 향할 때도 있었으나.. 2024. 8. 31.
일회성 만남 ^_^ 하늘은 지독하게도 파랗고, 그 사이에서 나부끼는 바람은 마치 갈 곳 잃어 떠도는 방랑자와 같았다. 꾹 눌러쓴 후드 사이로 흘러나온 보랏빛 밤의 장막이 걸쳐진 군청색의 머리카락은 길게 흔들거렸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꺼내든 쿼터스태프로 마물 하나를 길게 갈라내고는 시선을 옮긴다. 완연한 보랏빛의 눈이 파란 햇살에 흐릿하게 반짝거린다. 그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다가 상대를 빤히 바라보았다. 여기는 위험한데, 왜 또 나와있어? 보고 싶어서, 라는 장난 섞인 대답이 돌아온다면 손을 꾹 잡고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검고 흰 두 눈이 선명한 보랏빛의 눈보다도 더 밝게 반짝였다. 걱정돼서 온 거냐는 물음에 당연하다며 긍정했다.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지. 조금은 무모하게까지 보이는 사람이었으나 그냥 내버려두면 .. 2024. 8. 30.
상처투성이의.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사실 이해를 필요로 하는 일도 아니었다. 그는 군인이었고, 그저 주어진 대로 움직일 뿐이었다.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이용하면서, 적을 철저히 압살할 뿐이다. 그것에는 이해라는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끊임없이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눈앞에서 누군가가 죽어나가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나약함인지, 다정함인지, 혹은 이기심인지. 혹은 전부 다인지... 알 수 없다. 앞으로도 평생 알 수 없을 성싶었다.밤에 불어오는 바람은 차갑기 그지없었고, 그리하여 밀려오는 슬픔은 잔혹하여. 달빛을 받아 어슴푸레 빛나는 암녹색 머리칼이 흘러가는 바람에 물결친다. 긴 머리칼을 넘기려는 행동조차 하지 않고 걸음을 옮겨 한 사람 앞에 자세를 낮추고 상대를 슬 바라본다. 온갖 상처를 주.. 2024. 8. 11.
새로운 날의 축복을. 여명의 어슴푸른 녹빛 햇살이 시원스레 쏟아진다. 녹빛 하늘 아래서 시선을 주고받던 둘은 금세 웃어버리고 말았다. 곱게 차려입은 정장이 부드러웠다. 맞잡고 있던 손에 간질간질한 온기가 전해진다. 봄바람이 불어와 잘 다듬어놓은 머리칼 끝을 옅게 흐트러뜨린다. 마주 잡은 손 대신 다른 손으로 머리칼을 조심스레 넘겨준다. "결혼식 날인데, 기분이 어때?" "어제처럼 긴장되진 않네요. 오히려 차분해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뺨에 온기가 닿았다. 흐드러진 머리칼을 조심히 넘겨주곤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춘다. 투명한 푸른 눈과 금빛 눈이 지독하리만치 잘 어울린다. 둘은 웃음소리를 흘린다. 짧은 웃음소리 끝에는 길고도 짧은 대화가 오간다. 아이작과 현, 둘의 첫 만남부터 같이 지내게.. 2024. 7. 21.
[생일 축전] 넘치지 않는 것. 원목 스태프의 끝에 마나가 모인다. 마나는 곧 돌풍을 일으키고, 돌풍은 날카로운 쐐기가 되어 마물을 찢어발긴다. 곧 마물의 몸체가 갈라지고 그것을 이루던 핵이 바닥에 떨어져 아무렇게나 굴러 다녔다. 달아람은 마물의 핵을 집어 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마물의 핵은 많은 것으로 쓰였다. 보통은 마도구에 박아 넣고, 이따금 장신구로 만들어 쓰는 경우도 있었다. 민간신앙에서는 그런 장신구가 액운을 막아준다고 하기도 했다. 달아람은 제 손바닥의 절반도 채 안 되는 선명한 푸른빛을 띠는 마물의 핵을 바라보며 느릿한 감상에 빠졌다. 혹시나, 아주 혹시나. 이런 마물의 핵으로 장신구를 만들어 제 동생에게 쥐여주었다면... 그렇다면 살 수 있었을까. 어디까지나 민간신앙이었고 또한 아무런 마법도 걸지 않은 장신구를 가진다고.. 2024. 7. 1.
이해한다는 것. 모든 사람은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살아가는 평생을 한 발자국 물러나고 다가가며, 부딪히고 깨지며, 각진 것은 둥글게 마모되며 살아간다. 저 높은 곳에 있던 어리고 어린 신은 인간의 그런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어느 날, 밤하늘의 별들이 아주 곱게도 반짝이던 어느 날 신은 바닥에 발을 디뎠다. 싱그러운 흙의 감촉, 마음껏 나부끼는 수풀의 향기, 사랑해 마지않는 인간들의 웃음소리와 춤사위. 어린 신은 찬란하게 살아내고 기꺼이 타오르는 모든 것에 매료되었다.어린 신이 내려간 곳은 타 지역과의 교류도 많이 없던 곳이었다. 전쟁의 씨앗도, 불화도 없는 평화롭기 그지없는 곳. 모두가 웃으며 살아갈 수 있는 곳. 신조차도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이다. 그런 것은 신화 속에나 존재한다고 할 법했.. 2024. 6. 29.
인간다운, 인간적인. 루이셸은 어떤 사람을 바라본다. 그 사람은 열망의 불꽃보다도 짙은 붉은빛을 머금고 있었지만 그것은 어쩐지 더없이 차가워 보였다. 누군가는 그것을 슬픔이라고 부를 것만 같았다. 혹은 잔인함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루이셸은 친절한 미소를 띠고 말을 건넨다. 안녕하세요, 길을 잃으셨나요?루이셸은 그 사람이 다른 세상에서 온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언젠가의 미래에서, 과거에서, 어딘가에 닿았던 인연이 이런 슬픔 가득한 대지까지 흘러온다는 것이 통탄할 따름이었다. 루이셸은 분명 다정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지만 대화 상대로는 그리 좋지 않았다. 온통 수단으로써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마음의 여유라고 할 법한 것이 없었다. 수단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여유가 아니었다. 오로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마음뿐이었다. "그대가.. 2024. 5. 15.
생각의 해방. 언제부턴가, 생각을 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졌다.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었으나, 한편으로는 이것만큼 적절한 표현이 또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생각은 지긋지긋하다. 제 인생에서, 깊은 생각이라는 것은 단 한 번도 도움이 된 적 없었다. 그것이 아이작 카터가 내린 간단한 해답이다. 그 해답에 따라, 필사적으로 생각을 외면하려고 했다. 생각으로부터 도망친다면 저보다 뛰어난 사랑스러운 동생이 미울 일이 없었다. 사랑해 마지않던 가족을 증오하게 되는 감정까지도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감정이라는 것이 으레 그렇듯 범람하기 마련이다. 감정의 범람을 따라 생각도 범람하는 것은 필연이었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에는 증오가 서렸고, 증오가 서린 애정을 온전히 깨달으려 할 때는 생각을 외면하려는 필사적.. 2022.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