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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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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은 하나의 연극이라.

by @Zena__aneZ 2022. 9. 30.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좋아하고, 적지 않은 이들은 비극적인 이야기에 매료된다. 하지만 그런 비극적인 이야기는 아무런 까닭도 없이 탄생하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들은 모두, 누군가가 은연중에 겪은 일들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제 것이 아닌 타인의 삶을 멋대로 재단하고, 이야깃거리로 삼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냐고 묻는다면, 기꺼이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우리는 좋든 싫든 누군가의 이야기를, 삶을 삼켜내며 자라지 않았나.
그것은 결코 달갑지 않은 사실과 동시에,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

길고도 짧은 생각을 이어가던 그 사람은 유리잔을 들었다. 유리잔을 작게 흔들었다. 알코올의 알싸한 향을 머금은 액체가, 황금빛의 조명을 받아 빛난다. 아름다운 황금빛의 윤슬이다. 그는 잔을 입가에 대고 목을 가볍게 축이듯 한 모금 마셨다. 술잔을 내려둔 채로 종이를 집어든다. 종이 위에 수놓이듯 적힌 글자들을, 연극 대사를 격정적인 환호와 함께 읽어내려간다.

"아, 모든 것이 끝이다!"

"나의 삶은 한 번도 달콤한 적 없기에,"

"죽음이여,"

"신의 이름을 가진 안식이여!"

"나는 그대에게 경배를 바치리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비극적인 환희의 언어. 독한 술이 스며든 목에서 새어나오는 목소리는 모든 이들이 좋아하던 연극 배우의 언어였다. 이 연극이 누구의 이야기인지도 모른 채 환호하는 이들을 볼 때면 절로 웃음이 난다. 검은색 숄이 나풀거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 사람은 종이를 놓아버리고 소파에 몸을 뉘였다.

"..."

사람들은 비극적인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것이 누구의 이야기인지 알 필요도 없이. 그저 흥미만 있으면 되었다. 그랬기에 그 사람도 제 삶을, 제 이야기를 써내려가 팔았다. 모든 사람에게 미움받고, 복수하고, 끝에서야 웃으며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악인의 이야기를. 흥미를 쫓는 이들에게 그 사람의 비극은 그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다. 지나치게 현실성이 없고, 지나치게 현실적이기에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다가도 그저 이야기로 바라본다.
그 사람은 언제나 무대 위에 선다. 자신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하나의 길고 긴 연극으로 풀어낸다. 서로가 서로의 이야깃거리가 되는 세상에 거리낄 것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사람의 삶은 연극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니 모두가 연극배우가 되어야 맞지 않나.

그 사람은 실없이 웃었다. 가느다란 황금빛 조명에 눈이 부셔서 눈을 감아버렸다. 지독한 암흑이 찾아왔다. 익숙한 절망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