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난 직후, 내가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짙고 어두운- 새카만 허공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들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노라면 꿈에서는 생기를 얻어 살아 움직이던 모든 것들이 느릿하게 가라앉는다. 꿈보다 더욱 꿈같은 지금은 암흑 속에서 가라앉은 것을 삼키며 꿈틀거린다. 내가 그 감정에게 먹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어둠 속에 먹히는 것인지 알 수 없고, 알 수 없다는 사실과 함께 구분할 필요도 없다. 애초에 나는 어둠 안에서 안온을 찾는 것에 빌어먹게도 익숙하다. 집 안에 하나뿐인 랜턴을 켜면 눈이 부시고 심장 한 켠이 따끔거리는 느낌이 들고,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랜턴을 켤 힘도 없으며.. 아니, 가장 큰 문제는 아니다. 정말로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아주* 공교롭게도 랜턴 안에 오일을 넣었다는 사실을 까먹었다는 것이겠지. 어떤 것이든 겸사겸사,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 생각하며 어둠 안에서 찾은 안정을 온전하게 누린다.
한참 동안 어둠 속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 멀리 떨어져 있던 의식이 서서히 돌아온다. 가장 먼저 돌아오는 의식은 역시 시각이며, 그다음으로 돌아오는 감각은 후각인 것 같다. 감각이 돌아오는 감각이 너무나도 명확해 '눈으로 본다'는 착각마저 해버릴 정도니까. 침대 위에 가만히 누워있다가 불현듯 시야 한 구석을 파고드는 향기에 고개를 창가로 향했다. 밖에서 눅진하게 젖어들어 습한 흙의 향기가 연하게 풍겨져 방 안을 메워나간다. 아니, 이미 메워져 있었나.. 피로감이 채 가시지 않은 몸을 끙, 소리와 함께 일으키곤 사부작거리는 낡은 이불을 거친 손으로 조심히 거둔다. 느릿느릿 신발을 찾아 신고 나서 아치형 창문 앞에 선다. 그 일련의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창문을 가만히 바라보다 자그맣게 서리 낀 창문을 손끝으로 조심히 문지른다. 하얀 창문에 투명한 그림이 그려지고 -그림 실력은 영 꽝이라 형태도 알아볼 수 없지만- 투명한 그림 너머에는 이슬이 맺힌 꽃들이나 칙칙한 색채의 풀들이 보인다. 녹빛으로 어슴푸레 물들어가는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는 완전하게 끈적한 새벽하늘. 비가 그리 많이 내린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는데, 참. 많이도..
"..."
의식을 따라 하나씩 자리 잡아가는 감각을 온전히 느낄 때면 마치 상처 투성이의 세상을 둘러보는 것 같다. 영혼은 몸을 빠져나가 밤새도록 어둠 속을 유영하지만 신체는 영혼을 끈질기게도 붙잡아서. 결국 우리는 생각하며 움직이는, 여행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창문을 열어 야트막하게 들어오는 새벽빛을 온전히 받아내며 숨을 내쉬었다. 한숨이 구름처럼 사라졌다. 찬 바람이 뺨을 두드리며 마지막 남은 감각마저 실어다 주었으니 다시 한번 하루를 살아내는 수밖에 없다. 아, 이러고 있으니 작열하는 태양의 향기가 그리워진다. 아침으로는 간단한 음식을 하나 해 먹을까. 오일 랜턴의 기름을 채우는 것도 잊지 말고.. 아침부터 할 일이 산더미니 움직이는 것이 좋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