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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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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여행

by @Zena__aneZ 2023. 8. 27.

트리거 워닝 : 은유적인 죽음
해당 글은 죽음을 앞둔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전하려고 쓰는 유서입니다. 이런 글에 거부감이 드신다면 보지 않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나의 친우에게 이 편지를 바칩니다.]

나의 친우, 혹은 친우라고 생각했던 당신에게 안 좋은 소식을 전하게 될 것 같습니다. 사실 당신이라면 예상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합니다. 언젠가 전해야 할 소식을 한 자, 한 자 눌러 담는 것이 이토록 쓰린 것은 아직도 당신이 걱정되어 그런가 봅니다.

건강이 안 좋아졌습니다. 평생 회복되지 못할 정도로요. 상태나, 병에 대해서나.. 그런 것들에 대해 말하기보다 내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나는 취미로 책을 쓰는 사람입니다. 그림을 보는 것도 좋아하고, 무언가를 정성껏 만드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리고 파란 단어들도 좋아합니다. 바다, 하늘, 새벽, 여행... 모두 나와는 먼 단어인데 이토록 끌리는 이유를 나조차도 잘 모릅니다. 아마 앞으로도 모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활자 속의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유를 궁금해하고, 책 속의 인물이 삶의 이유를 가지는 것을 보고 이토록 벅찹니다. 그중에서 특히나, 강하면서도 꾸준히 선한 사람을 참 좋아합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왜 나는 선한 이들의 이야기에 이끌리는 걸까, 하고요. 생각해 보니 답이 간단하더랍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었어요. 어떤 역경이 있어도 그걸 이겨내서, 빛나는 주인공이 되는... 하지만 나는 강한 사람이 아니고, 멋진 사람도 아닙니다. 아마 당신도 활자 속의 인물처럼 모든 것을 다 하진 못할 거예요. 하지만 당신은 충분히 빛나는 사람이에요. 어쩌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요. 난 당신을 정말 좋아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책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하지만 난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난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난 죄악을 원합니다. 나는 그 말에 힘을 얻어 지금까지 잘 살았습니다. 내가 원한 죄악과 내가 원한 자유와 내가 원한 선이었으니까요. 모든 순간이 항상 행복하진 않았지만, 모든 순간이 항상 불행하지도 않았어요. 나는 그럭저럭 잘 살았습니다. 당신도 이 말에 힘을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차라리 사라지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에게 당신이 원한 신과, 자유와, 선이 찾아가기를. 그리고 새로운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충분히 행복할 자격이 있으니까요.

... 생각해 보면, 나는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피곤하기만 하고, 낭만은 별로 없다고 느끼니까요. 그런데 갑자기 문득 여행을 떠나고 싶어 졌습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날까 합니다. 세상의 끝에도 가보고, 우주의 끝에도 가보고... 아마 많은 곳을 돌아다녀야 해서 바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평생 당신을 만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편지를 전해줄 수도 없고, 대화도 못하겠죠. 목소리도 못 들을 겁니다. 그것이 조금 서글플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번 결정한 것이니 이제 와서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길고 긴 시간 동안 연락이 없어 허전하시다면, 이걸 생각해 주세요. 나는 정말 여행을 떠나는 겁니다. 작은 먼지보다 더 조그마해져서 바다에도 가보고, 우주 끝에도 가볼 겁니다. 어쩌면 당신의 근처에 돌아다닐 수도 있습니다. 슬퍼하지 마세요. 대화도 못하고, 그렇다 할 연락도 못하겠지만... 나는 어딘가에서 분명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또 슬퍼진다면 울어도 괜찮습니다. 소리 질러도 괜찮아요. 그걸 내가 어딘가에서 듣는다면, 그저 가만히 옆으로 와있다가 다시 여행을 떠나겠습니다.

그러니 괜찮습니다. 다 괜찮아요.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말이 너무 길어졌네요. 활자를 전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여행이 끝나고 다음의 삶에서 볼 수 있다면, 그때 또 봅시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기를.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