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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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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꽃집입니다!

by @Zena__aneZ 2023. 10. 14.

그런 상상을 해본 적 있나? 만약에 내가 다른 세상으로 간다면. 그리고 그 세상에서 아주 친절하며 이상한 것들과 만나면, 이상한 것들 사이에서 평범하고 착한 사람을 만나면 어떤 느낌일지.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이상함이 평범함이 되는 곳에 있는다면 어떤 느낌일지. 그리고 이건 평범한 사람이 우연히 다른 세상으로 가는, 지극히 동화적인 이야기이다.

"어서 오세요! 찾으시는 게 있으신가요?"

현실감이라곤 전혀 없는 공간을 불안한 듯 둘러보던 남자는 놀란 듯 시선을 굴렸다. 남자는 어떠한 일을 하다가 우연하게도 이곳에 들른 것뿐이다. 이런 이상한 공간에 올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패싸움을 하다가 대뜸 이런 곳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누가 예상할까. 게다가 바깥에는 영 사람처럼 안 보이는 이상한 것들이 배회하니 급히 평범해 보이는 이곳으로 들어온 것인데, 이곳은 하필 꽃집이었다. 꽃에 조예가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자신은 패싸움을 하다가 이런 이상한 곳으로 와버린 것이니 여간 당황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남자의 반응을 세심하게 살피던 여성은 화사하게 웃어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일단 앉아계시겠어요? 이런 공간에 처음 오시는 분들이 종종 당황하곤 하는데, 여긴 전혀 위험한 공간이 아니거든요."

"아, 예... 감사합니다."

짧게나마 감사인사를 전한 남자는 여성의 안내에 따라 창가 쪽에 앉았다. 여성은 작은 티팟을 가져와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이 세계에 처음 방문하시는 분께 드리는 서비스에요. 여성은 그리 말하곤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남자는 제가 앉은자리에 올라온 차를 바라봤다. 종류를 알 수 없는 차와 찻잔... 남자는 이곳이 참 평범하게 생겼으면서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야, 보통 꽃집에 이런 찻집에서나 쓸 법한 물건을 놓지는 않으니까. 차나 꽃에 아예 문외한이었으니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남자는 찻잔을 잡고 안의 내용물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차를 많이 즐기는 편도 아니었고... 그래도 준 것을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으니 한 모금 마셨다. 따뜻한 찻물에 긴장감은 어느 정도 풀려간다. 찻잔 위에서 머물던 시선이 여성에게 향한다. 길게 물결치듯 내려오는 새하얀 머리카락에 인상적인 연분홍색 눈, 분홍색 카디건. 이런 실내에서는 조금 더운 옷차림이 아닌가 싶었지만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겠거니 하고 넘겼다. 시선은 다시 찻잔 안에 머물렀다. 폭력과 소음에 익숙해진 참이었으니 이런 차분하고 조용한 순간이 소중했다. 처음은 그저 당황스러웠지만, 이렇게 평화로운 순간이 언제 또 올지 생각한다면 지금을 즐기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차는 입에 맞으세요?"

 

"예, 예?"

 

조금 멍청한 소리를 흘리던 남자는 퍼뜩 정신을 차리곤 시선을 옮겼다. 차가 맛있다며 -사실 맛있는 차가 무엇인지는 잘 몰랐지만- 말하는 남자의 말에 여성은 환하게 웃었다. 여성은 맞은편에 의자를 도로록, 끌고와 앉아 말을 이었다.

 

"여기는 꽃집이에요. 그리고 이곳에는 여러 곳에서 온 분들이 방문하곤 해요. 바깥은 다른 곳과 연결된 복잡한 통로들이 잔뜩 얽힌 공간이구요."

 

"그러니까, 여긴... 다른 곳이라는 건가요?"

 

"맞아요! 다른 차원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하겠네요!"

 

여러 세계의 통로가 얽혀 만들어진 공간 사이에 자리 잡은 평범한 꽃집은 다른 사람들을 평범함으로 끌어들인다. 처음에 이곳에 온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도록, 하나의 지표가 되는 셈이었다. 다른 때였다면 이걸 농담 같은 것으로 받아들였겠지만, 이미 밖에서 이상한 것들을 보고 온 사람이라면 쉽게 믿을 수 있었다. 지금의 남자처럼.

 

"... 그럼,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그럼요! 얼마든지 돌아갈 수 있고, 다시 올 수도 있어요."

 

여성은 남자의 반응을 찬찬히 살피다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평범하지 않은 세상에서 무언가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는 것은, 지금의 평화로운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는 뜻일 테니까. 여성은 이곳에 의도치 않게 방문하게 된 사람들에게 늘 친절하게 대했고, 그것이 이 꽃집에 꾸준히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이유였다. 여성은 친절하게도 돌아가는 길목까지 안내해 주었고, 이곳에 오는 마법 같은 방법도 알려주었다. 마법같은 일이었다. 전쟁터 같은 곳에서 평화로운 곳까지 한 걸음만에 갈 수 있었다.

이 만남은 어떠한 좋은 변화일 것이라고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