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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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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김은 잠을.

by @Zena__aneZ 2022. 1. 14.

온몸이 너덜거린다. 이것은 분명 소형 폭탄 때문이었다.
작은 크기였지만,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로 강력한 폭발력을 보여준다. 단 한 번의 폭발로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수많은 이들은 이 폭탄 때문에 즉사했다.

계획한 대로 일이 진행되었다. 생각한 것보다 부상의 정도도 낮았다. (그래 봤자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죽겠지만.) 폭탄을 달고 터트린 사람의 몸이 이 정도까지 버티다니.. 과학기술 발전의 좋은 점이라고 한다면, 바로 이 빌어먹도록 튼튼한 신체를 거금의 돈을 들이거나 실험 대상자가 된다면 바로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빌어먹게도 튼튼한 신체를 가지게 된 게 처음으로 기뻐졌다. 결국 그 생지옥에서 탈출했으니까.

...
죽기 전에, 바다를 한 번 정도는 더 보고 싶었는데. 그것은 조금 아쉽게 됐을지도 모르겠네. 그런 사실에 애석하게도 눈에선 눈물 한 방울 떨어지지 않았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죽기 전에, 바다를 꼭 닮은 저 푸른 하늘을 질리도록 눈에 담을 수 있었으니까.

평소엔 하지도 않던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 들어온다. 눈앞에 한 형체가 아른거린다.

"..."

".. 축하한다, 아주 멋진 반란이었어. 역사엔 혁명쯤으로 기록될 거야."

선명하기 그지없는 시야로 그 사람을 바라봤다. 그 사람이 바라보는 그의 눈 안에는 연한 보랏빛이 깃들었고, 평소엔 짓지도 않던 웃음은 입가에 넘실거린다. 하하, 죽을 때가 돼서 그런가. 그런 실없는 농담을 던졌다. 그의 앞에 한 사람은 묵묵히 그의 곁을 지켜주었다. 그 사람의 뒤에 펼쳐진 푸른 하늘빛이, 지독하게도 그 사람과 잘 어울렸다. 그곳에 서 있는 게 너라서 다행이다, 정말로. 그 말은 하지 않았다. 말과 감정을 삼키며, 그저 웃어 보였다. 맛이 느껴질 리 없는 입 안쪽에서부터 쌉싸름한 기쁨의 맛이 차오른다.

성공한 반란이었다. 다친 이도, 죽은 이도 많은. 지극히도 평범한 반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고통 없는 반란은 없었다. 모두가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애써 현실을 꾸역꾸역 삼킨다. 모래를 억지로 삼키는 듯, 목에 잔뜩 생채기를 내며 삼켜져간다. 미처 소화하지 못한 현실의 쓸쓸함이 모든 것을 공허하게 만든다. 그제야 칼을 든다, 그리고 그 칼이 향하는 곳마다 절망이 흐른다. 우리의 삶은 결국 절망이 가득한 희망이었으니, 이 얼마나 모순적인 이야기인가.

이미 한참 전부터 피를 흘릴 수 없는 몸을 가진 그의 목구멍 안쪽부터 새빨간 액체가 차오른다. 입가와 옷을 적시는 오일에서 진한 피의 향이 느껴지는 것은 그저 기분 탓이었을까, .. 알 수 없었다.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점차 시야가 흐려진다. 멀리 떠다니던 구름이 눈 앞에서 부서진다. 참, 지독하게도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풍경 속에 있는 게, 내가 아니라 너여서 다행이었다.

"... 졸린 게, 이런 거였구나. 정말.. 엄청 무겁네..."

평생 감길 리 없던 눈이 무겁다. 낯설고도 익숙한 그 감각은 서서히 다가오는 그림자를 떠올리게 한다. 두려운 감각이지만,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너무나도 많은 길을 걸어오지 않았나. 더는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그는 언제나 그랬듯, 고요하게 말을 꺼냈다.

"그 반란에 참여한 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절망 중에서, 가장... 큰 희망이었어..."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반란은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망가진 채로 고통을 눈물처럼 흘리며 살아갔겠지. 나는 네게 고맙다, 정말로 고맙다. 그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테니까.

".. 잘 자, 아이리스."

"고마워.. 배웅, 해줘서.. 그 아가씨는.. 잘 지켜주고..."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그 누구도 붙잡지 않는다. 붙잡을 수 없을뿐더러, 붙잡고 싶지도 않은 까닭이었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말을 꺼내놓는다. 차마 못다 한, 그런 말들을 삼켜두고, 실없게도 당연한 이야기만 늘어놓고.
하늘의 푸름이 두 눈을 감겨주었다. 그렇게나 곱게 감긴 두 눈은 지금까지의 모든 일이 거짓말이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거짓말 같은 현실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푸른 그림자가 그의 몸을 덮는다, 사람 없는 고요한 장례식의 행렬이 이어진다.

한 사람은 눈을 감은 그를 향해 마지막 침묵을 지키고, 그는 푸른 그림자를 따라 걸으며 고요히 기도한다.
네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있어 몇 없는 기쁨이었다, 그렇게 기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