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거 워닝 : 유혈, 살해
이 글은 전부 가상의 현실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상기 명시된 소재는 현실에서 일어나선 안 되는 것이며, 일어난다고 하면 비극적인 일입니다. 글쓴이는 이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위와 같은 일을 옹호하거나 지지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그날 밤은 유난히 추웠다.
늘 떠오르던 달의 부재 때문인지, 언제나 존재하던 차별 때문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 차별을 만들어낸 사람들에게 향해야 할 칼날은 결국 누구에게 향했는지.
그것조차 알 길이 없었다.
"ㅡ 허억, 헉."
덱시온은 불현듯 머리에 물이 쏟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것 같은 침묵의 액체는 폐부 깊숙이 스며들어 도저히 숨을 쉴 수 없게 만들었다. 끔찍하다, 토할 것만 같아. 덱시온은 숨을 애써 뱉어내던 입이 어둠 속에 드러나있는 것을 깨닫고 한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핏기 없는 입술에, 그리고 허옇게 질린 목에 손가락들이 닿으며 피가 엉겨 붙었다. 이 어둠이 제 목숨을 집어삼켜버릴 것만 같았기에 끈적하게 엉겨 붙는 손을 도저히 떼어놓을 수 없었다. 덱시온은 이미 숱하게 손에 피를 묻혀왔고, 남에게 상처를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건만, 이번은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덱시온은 제 흉터투성이인 손에 꿈틀거리며 들러붙은 채 차게 식어가는 피를 바라봤다. 그의 손에 묻어나는 것은 언제나 살아있는 피였다. 그런 피였었다. 살인의 대가가 이런 끔찍한 감각이라니, 덱시온은 애써 헛구역질을 참으며 제 목과 입을 감싼 손을 내리려 필사적으로 노력했으나 결국 부질없는 행동이었다.
생(生)을 증명하던 피는 어느 순간부터 사(死)의 증거가 되었다.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의 심장이 멈췄단 말이야? 그 생각은 몸집을 불려 거대한 암흑이 되었고, 그런 암흑은 결국 끔찍한 고통이 되었다.
덱시온은 사람을 사랑했다. 누군가를 지키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덱시온은, 사람을 사랑했었다.
누군가를 살리고 싶어 누군가를 죽인다면, 그것은 과연 정당한 행동인가? 덱시온은 스스로에게 납득이 될 만한 답을 내놓기도 전에 제 손에 힘을 주었다. 제 목을 이렇게라도 누르지 않는다면 숨통이 막혀 쓰러질 것만 같았다. 머물 곳을 찾지 못한, 어지러운 시야 안에는 온통 삶의 종막을 연주하는 피로 가득했다. 사람을 죽였다, 내가. 피도 통하지 않는 아이들, 이토록 혐오스러운 저를 가족이라고 여겨주는 사랑스러운 동생들을 그토록 지키고 싶어 했던 내가, 결국 사람을 죽였어. 난 그들과 다르지 않은 건가? 나는 결국 그들과 같은 존재였던 건가? 나는, 누군가를 죽이지 않으면 지킬 수 없는 존재인가?
덱시온은 그토록 혐오하던 어른과 같은 길을 걸었다.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소름 끼칠 정도로 같은 행동을 했다. 덱시온은 제 목에서 손을 내렸다. 혼란스러운 시선 속에서 무언가 결심한 듯,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괴물을 잡으려면 잡는 이조차도 괴물이 되어야 한다 했던가.
같은 괴물이 되더라도, 같은 어른이 되더라도 나는 지키고야 말겠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보답받지 않더라도 괜찮았다. 모든 게 괜찮아야만 했다.
앞으로 이런 수많은 괴물들을 상대하려면 나는 더한 괴물이 되어야만 한다.
내가 사랑하는 동생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게 진심이던가, 아니면 자기 합리화이던가. 그 누구도 그것을 가늠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