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생각을 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졌다.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었으나, 한편으로는 이것만큼 적절한 표현이 또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생각은 지긋지긋하다. 제 인생에서, 깊은 생각이라는 것은 단 한 번도 도움이 된 적 없었다. 그것이 아이작 카터가 내린 간단한 해답이다. 그 해답에 따라, 필사적으로 생각을 외면하려고 했다. 생각으로부터 도망친다면 저보다 뛰어난 사랑스러운 동생이 미울 일이 없었다. 사랑해 마지않던 가족을 증오하게 되는 감정까지도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감정이라는 것이 으레 그렇듯 범람하기 마련이다. 감정의 범람을 따라 생각도 범람하는 것은 필연이었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에는 증오가 서렸고, 증오가 서린 애정을 온전히 깨달으려 할 때는 생각을 외면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이 발목을 잡았다.
아이작 카터는 제 증오 어린 애정을 동생에게 전했다. 나는 나보다 뛰어난 너 때문에 괴롭다고. 그것을 단 한 번도 온전한 언어로 말한 적 없으나, 단 한순간도 표현하지 않은 적 없었다. 어리고 순수한 동생이 그것을 알까?라는 질문에는 언제나 긍정의 대답이 튀어나왔다. 동생은, 나를 좋아했으니까. 내가 저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아도, 기꺼이 이해해줬을 테니까. 그 사실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부끄러우면서 화가 났다. 나는 너처럼 착하지 않으면서도 모질게 대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알고 있었다. 동생이 뛰어난 것은 동생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결국 둘을 비교하며 양쪽을 다 갉아먹고 마는 부모의 잘못이라는 것. 하지만 부모는 자식의 세상이기에 증오해도 그 마음을 쏟아낼 길이 없었다. 범람하는 감정과 생각은 항상, 제 동생에게 향했다.
"내가 죄를 짓고 있었나 봐, 이즈멜."
참 우습지 않니, 내 동생. 내 닿지 못할 사과를 듣는 너는 한낱 꿈에 불과한데. 호흡과 함께 뱉어내고 삼켜낸 언어가 너덜한 속을 찔러온다. 애증 어린 동생에게 사과하고 싶으면서도 필사적으로 사과하지 않은 까닭은 그 이유였다. 난 너에게 용서받고 싶지 않다. 아이작 카터는 그 사실에 다시금 헛웃음을 흘린다. 아, 사람의 생각은 정말 알 수가 없다. 이래서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아, 나는...
나의 사랑하는 동생.
나를 용서하지 말아 주겠니.
아이작 카터는 그 생각을 하며, 다시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토록 하고 싶지 않은 생각을 차분히 정리하니, 그 안에는 범람하던 모든 감정들이 뒤섞인 채로 놓여있었다. 사랑, 증오, 행복, 슬픔, 분노... 그 모든 감정을 되지도 않는 농담으로 꾹꾹 눌러 담으니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정말 멍청하기 그지없다. 멍청하지 않았던 적도 없다.
애증 어린 내 동생아. 너는 알고 있었니. 나의 증오의 아래에는 언제나 애정이 넘실거린다는 것을. 넘실거리는 애정은 증오가 되어 어린 너에게 비수가 되어 꽂혔음을. 넌 언제나 나보다 똑똑했으니 이런 간단한 사실을 진작에 깨닫고도 남았겠구나. 알면서도, 피하지 않았겠구나...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참을 수 없는 졸음이 쏟아진다.
드디어, 이 빌어먹을 생각으로부터의 해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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