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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로그 선물

이해한다는 것.

by @Zena__aneZ 2024. 6. 29.

모든 사람은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살아가는 평생을 한 발자국 물러나고 다가가며, 부딪히고 깨지며, 각진 것은 둥글게 마모되며 살아간다. 저 높은 곳에 있던 어리고 어린 신은 인간의 그런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어느 날, 밤하늘의 별들이 아주 곱게도 반짝이던 어느 날 신은 바닥에 발을 디뎠다. 싱그러운 흙의 감촉, 마음껏 나부끼는 수풀의 향기, 사랑해 마지않는 인간들의 웃음소리와 춤사위. 어린 신은 찬란하게 살아내고 기꺼이 타오르는 모든 것에 매료되었다.

어린 신이 내려간 곳은 타 지역과의 교류도 많이 없던 곳이었다. 전쟁의 씨앗도, 불화도 없는 평화롭기 그지없는 곳. 모두가 웃으며 살아갈 수 있는 곳. 신조차도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이다. 그런 것은 신화 속에나 존재한다고 할 법했으나, 신이 인간과 함께하는데 그것이 신화가 아니라면 무어란 말인가? 신은 인간을 사랑했고, 인간도 신을 사랑했고, 숭배와 공양 대신 친애와 믿음이 넘쳐흐르는 이것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신의 힘이 밤의 장막처럼 흘러내려 인간들을 지킨다. 인간들은 그런 신을 동경하고, 함께 손을 잡아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영원할 것만 같은 행복이 늘어진다.

 

하지만 이 세상에 영원이란 없다. 어느 날, 어린 신은 잠시 자리를 떠났다. 신에게 있어서는 찰나와 가까운 순간이었으나 인간에게는 영겁의 순간과 같았다. 신의 힘이 사라진 숲과 황금의 밀밭 위에는 선명한 불길이 번진다. 웃음소리와 꿀이 흐르던 땅은 이윽고 지옥으로 변모한다. 신이 찰나의 시간 동안 떠나 있다가 돌아왔을 때에는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인간이 친애하던 신은 그들의 잔해를 손안에 담았다. 빛바랜 흙먼지가 바람에 흩날려 다시 저 멀리 떠난다. 처음으로 마음을 준 이들이었다. 처음으로 사랑했던 이들이었다. 어린 신은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슬퍼했다.

 

"니아르코스, 당신의 슬픔을 이해하지만..."

 

"저를 이해한다고 하지 마세요."

 

비단 인간뿐만 아니라 신들도, 혹은 그 외의 모든 생명은 다른 생명을 이해할 수 없다. 몰이해의 바다에서 서로가 모르는 손짓을 한다. 감히 나를 이해한다고 하지 마세요. 나는 그들을 진심으로... 신의 눈물이 떨어진다. 그것은 비가 되기도 하고, 눈이 되기도 하였으며, 또한 더없는 슬픔 그 자체가 되어 별처럼 빛나기도 했다. 몇몇 다정한 신들이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어린 신에게 다가간다. 우리 모두 당신과 같은 슬픔을 겪었습니다. 그러니, 부디 슬픔을 멈추어 고개를 들고... 다른 아이들이 사는 세상을 바라보세요.

 

"세상은 넓습니다, 니아르코스. 그러니 찰나의 비탄에 모든 것을 맡기지 말고 나아가세요."

 

어린 신이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자 많은 것이 보였다. 그것은, 신이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바라본 풍경과는 아주 다른 것이었으나 또한 비슷했다. 어린 신은 인간이 입는 옷을 입는다. 모습을 인간으로 바꾼다. 그리하여 완전한 인간과 다를 것 없는 모습이 되었을 때, 어린 신은 인간들의 세상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모든 생명을 다시 한 번 사랑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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