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본 내용 기반 글
하얗고 검은 건물들이 즐비한 이곳은 색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없었다. 다만 그 사이에서 유일하게 반짝이는 것은 푸른 하늘과 기묘하게 빛나는 건물 두어 개 정도였다. 얼마 전, 한 기업에서 대규모로 인원을 모집하는 일이 있었다. 사회실험이라도 한다고 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보상금도 엄청났다. 사람 목숨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이 사회에서 그것은 질 좋은 물건처럼 여겨졌고, 많은 이들은 그 실험에 참가했다. 그룹을 크게 4개로 나누어졌다. 한 그룹당 500명이라는 인원이었으니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 감이 오리라 믿는다.
실험 장소는 백화점과 비슷하게 생긴 건물 내부였다. 뭔가 굉장히 묘하게 생긴 건물이었다. 하얀색과 은은한 연 노란빛 조명, 또는 연푸른 간접조명이 가득하고 벽은 약간 베이지색이고 바닥은 짙은 갈색이었다. 길은 온갖 복잡한 구조로 꼬여 있었고, 그중에는 미로와 비슷한 공간도 있었다. 통유리가 정말 많았다. 외벽은 대부분 통유리였다. 바깥의 풍경은 흰색 건물들이 즐비했다. 그 사이로 사람이 오가는 모습이 마치 개미와 같다 느껴져 퍽 징그러웠다.
나와 함께 온 두 친구는 함께 테스트에 참여했다. 테스트 진행 중 죽을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으나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차피 느리게 죽어가는 세상에서 죽음이 갖는 의미는 그리 특별하지 않았으니까. 테스트 진행 전 카페처럼 준비된 공간에서 함께 음료를 마시며 웃고 떠들던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 테스트의 규칙에 대해 안내 방송이 나온다.
1. 지킬 것이 정해진다. 지킬 게 사람일 수 있다. 지켜지는 사람은 지킬 것이 없다
2. 지킬 것이 파괴될 경우 탈락
3. 지키는 것을 파괴할 경우 탈락
4. 햇살이 가장 좋을 시간(2시)까지 버틸 경우 테스트 통과
지금이 오전 8시인 것을 감안하면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다. 탈락하면 고이 밖으로 내보내진다. 사회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컸나? 하고 물어본다면... 잘 모르겠다. 알 수 없었다.
파괴되면 그냥 죽거나 죽음보다도 못할 정도로 고통스럽다. 파괴의 기준이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훼손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손목에 녹색 띠가 생긴다. 그리고 내가 지킬 이에게도 띠가 생겼다. 같이 온 친구. 다른 친구는... 반응을 보니 다른 사람을 지키는 것 같았다.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상대가 바로 지키는 것이 누군지 모르고, 사물을 지키는 사람이라면 그 사물이 뭔지 모르는 것이었다. 사회 실험이 이런 것을 뜻하는 것이었나, 싶을 즈음 테스트가 시작되었고, 처음에 대략 500명가량의 사람이 있었는데 테스트를 시작하자마자 일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다. 대략 30명이 죽고 30명이 탈락했다. 피가 바닥에 흥건한 것을 보고 있자니 속이 심히 메스꺼웠다. 두렵다, 그런 감각과는 다른 결이었지만. 그 꼴을 본 모두는 서로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피해 흩어졌다.
나는 친구의 손을 잡고 잘 숨어 다니거나 피해 다녔다. 다른 친구도 그랬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한 12시쯤 됐을 즈음, 200명이 남았다는 놀라운 소식이 방송으로 들려왔다. 그 사이에 240명가량의 사람이 죽거나 탈락했단 뜻이다. 그것이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어차피 별 것 없는 이야기였다. 이 사회가 싫은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평온한 음악을 들으며 돌아다녔다. 이런 음악 장르를 뭐라고 할지 잘 몰랐으나, 굉장히 평화로웠다. 분위기가 항상 좋았다. 아마 비명소리와 피만 아니었다면 평온하게 산책이나 하는 줄 알았을 정도로.
그때 누군가 내가 지켜야 하는 친구를 죽이려고 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시스템창이 떠서 알려주는 것이었다. 이런 시스템에 대해서도 알려주면 좋았을 것을. 사회 실험이라서 알려주지 않은 걸까. 탈락하기에는 아쉬워 나는 공격하는 사람의 칼에 찔렸다. 심장 부근을 미친 듯이 찔렀다.
결론만 늘어놓자면, 내 몸통은 결국 벌집이 됐고 상대는 탈락했다. 그 사람이 지킬 물건을 먼저 으깨버렸기 때문에. 친구가 상처를 치유했다. 순식간에. 그러고 보니, 지켜지는 것으로 지키는 것을 치료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이런 능력이었나?
지키고, 지키고, 부수고 으깼다. 계속 반복했다. 끊임없이, 계속.
어쨌든 나와 내 친구는 극후반까지 살아남았다. 시간이 훌쩍 지난 상황에서 다른 친구를 마주하니 반가웠다. 둘 다 꼴은 말이 아니었지만.
오후 1시 40분쯤에 인원은 30명 남짓 남았다. 테스트를 시작할 때처럼 한자리에 다시 모였다. 알고 보니 사람을 지키는 사람 중 살아남은 건 나와 A밖에 없었다. 바닥에는 피웅덩이로 가득했다. 정신적으로 피로해진 우리들은 대화를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그 어디에도 무언가를 몇 이상 파괴하라는 규칙이 없었는데 왜 그렇게 열심히 무언가를 부쉈는지. 그리고 우리들 중 탈락하면 무엇이 어떻게 되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자진해서 물건을 부순 몇몇 사람들은 평화롭게 건물 밖으로 걸어 나갔다. 사회로 돌아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사회에 질려 이 실험에 참여한 것이 아니었나?
그런 의문이 들 때쯤, 갑자기 어딘가로 이동됐다. 건물 구석구석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한 것 같았다.
문득, 나는 이 사회실험의 의의는 어디에 있는지 깨달았다. 다른 친구를 찾아가 그가 지키는 것을 파괴한 뒤 내가 지켜야 하는 이를 파괴했다. 죽였다는 뜻이다. 수차례 심장을 찌르고 복부를 찔렀다. 검붉은 피가 가득했다. 그는 대체 왜냐고 물어봤다. 아, 불쌍한 내 친구. 아직도 못 깨달았구나. 이렇게 해야만 했어. 그리 말했다. 드디어 목표를 이뤘다. 이 의미 없는 짓의 진의를 깨달았다.
테스트가 끝나기 직전인 1시 59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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