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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러 챌린지

거짓말같은 ■■.

by @Zena__aneZ 2022. 9. 23.

"..."

한 여성이 오묘한 바이올렛 색의 눈으로 그림을 바라본다. 반파된 벽에 걸려있는 아름다운 바다의 그림. 언뜻 그리움이 담긴 눈으로 보다가, 시선을 돌린 채 걸음을 옮긴다.

대륙과 바다는 언제나 단절된 공간이었고, 그랬기에 육지에서 사는 종족은 바다에 사는 종족을 볼 일이 없었다. 그랬기에 서로에게 어떠한 관심도 두지 않은 채, 각자의 삶을 살아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완전히 분리된 대륙과 바다의 경계는 불분명해지고, 결국 바다의 인류와 대륙의 인류는 만남을 가졌다. 서로 너무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이었기에 조화보다는 다시금 단절을 택했고, 그렇게 단절된 채로 평화롭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래야만 했다. 계속, 그래야만 했는데.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 미지의 영역에 대한 호기심. 그것은 은밀하게 퍼져나갔고, 결국 소리 없는 고요한 전쟁으로 이어졌다. 어느 전쟁이든 참혹하다. 소리 없는 비명과 푸른 피로 가득했다. 바다 한 구석이 짙은 푸름으로 물들었다. 그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대다수는 완벽하게 숨어버렸고, 몇몇 이들은 육지로 끌려왔다. 육지로 끌려간 것의 대부분은 특정 종족의 사람들이다. 그 모든 아이들은 가족의 죽음을 두 눈으로 똑바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무력했으니까. 가족을 죽인 인간과 같이 지내는 것은 변절자였으니, 감히 돌아갈 생각도 못했다. 이토록 무력했다.

"... 아파."

온 몸에 격통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발치에 굴러다니는 기계의 파편을 무신경하게 바라보던 그녀는 불안정한 호흡을 한 번 내뱉고,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바다에, 가고 싶다. 내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제 반겨줄 이 하나 없다. 육지의 향기가 끔찍하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느껴지는 흙의 향기가 역겹다. 이런 흙의 향기를 가진 채로 아름다운 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내 고향, 이제는 조각나버린 나의 안온한 바다.. 당장이라도 숨이 멈출 것 같은 통증이 이어졌다. 하지만 쉽게 죽지는 않을 것이다. 해파리라는 종족의 특성이었으니까. 그리고, 죽어가는 가족의 부탁이었으니까.. 살아가는 게 저주였다. 감히 지워낼 수 없는, 가족이 내게 남긴 희망이자 끔찍한 저주...

억지로 만들어낸 인간의 육체 안에 어인의 몸을 가두는 실험이 진행되었다. 뭍에서 만들어진 육체는 그저 거부감과 구역질만 나게 할 뿐이었다. 그 모든 끔찍한 일들 이후에는 인간의 육체를 얻어냈다. 완벽에 가까운 육체. 그런 몸은 쉽게 부서졌고, 그만큼 쉽게 회복되었다. 실험이 성공적이었다는 뜻이었다. 바닷속에서 태어나 반 평생을 물의 향기를 품고 살아온 그녀의 육체는 이제 흙의 역겨운 향기가 뒤섞인다. 부러진 뼈와 찢어진 피부가 붙어간다. 해파리 어인이라는 종족은 놀라운 재생 능력을 품고 있었다. 그를 어디에 이용하려 했을까. 완전무결한 힘을 가지고 싶었던 걸까. 내 가족을 죽여놓고 나를 그토록 혐오하던 인간으로 만들었으니, 나는 너희들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 살려줘, 제발,"

"내 동족이 그 말을 할 때는 왜 살리지 않았어."

촉수가 길게 늘어져 사람의 목을 꿰뚫는다. 촉수와 몸에 끔찍한 작열통이 느껴진다. 너무 연약하다. 너무.. 이렇게나 연약했으니 지키지 못했겠지. 그래서 나에게 인간의 몸을 주고, 가장 먼저 끔찍한 고문과 다름없는 훈련을 시켰을 것이다. 그토록 증오스러운 당신들에게 딱 하나 고마운 점이 있다면, 이제는 이 통증에 익숙해지게 만든 것. 그것뿐이다.

"..."

바다, 아, 나의 그리운 바다. 내가 이 육체를 버리고 다시 본래의 몸을 찾는다면, 다시 돌아갈 테다.
푸른 바다로, 그토록 시리고 푸른 바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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