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확신을 받아내기 위해서, 돌아가자.
우리의 모든 의심이 시작한 곳으로.
모든 절망이 화려하게 꽃피우고, 백색의 눈물이 흐르던 그 성당으로.
한때 우리의 집이었던 곳으로.
그동안 참 많이도 걸어왔다. 모든 절망을 집어삼키고, 고통스러워했다. 천사라는 이름을 짊어지고 행한 성스러운 전쟁은 단순한 학살극에 불과했다. 그 학살극으로 인해 누군가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고, 그 학살극의 선두에 선 자들, 그들은 지울 수 없는 상처와 함께 죄업을 짊어졌다. 죄업에 무너지길 수 십번, 그들은 성스러운 전쟁이라고 불리는 학살극을 의심했고, 불신했다. 성전(聖戰)에 참여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은 자신을 의심했고, 그 성전을 이끈 대천사를 불신했으며, 신의 뜻을 거부했다. 먼 길을 걸어오고 나서야, 제 심장 안에는 처음부터 불신의 씨앗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무너진 몸을 일으켰다.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기 위해서.
불신과 의심, 거부는 씻을 수 없는 죄였다. 그것을 앎에도, 잃을 것이 없는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 나는 너를 지키기 위해서 걸어갔으나- 그것이 널 잃어버리게 된 이유였다. 나의 진실된 가족, 내 형재. 용서까진 바라지도 않아. 하지만.. 너와의 약속으로 살아가게 된 나를 이해해주지 않겠니.
그들은 불신과 의심을 연료로 삼아 다시 나아갔다.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그 누구도 몰랐다. 그랬기에 더욱 멈출 수 없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모든 것과 투쟁했고, 상처를 입고, 무너졌다. 하지만 결코 멈추지 않았다. 우린 우리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야 했다. 이 의심에 짓눌려 쓰러지기 전에, 죄업에 짓눌리기 전에 모든 감정의 범람을 막을 것이다. 감정의 범람을 막고, 기어이 진실을 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것이다. 확인한 다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고, 그 확신을 가진 채 우리는 다시 한 번 날아오를 테다. 우린 그 거친 폭풍 속에서도 꿋꿋이 걸어왔고, 밝은 햇살에 속절없이 작열통을 앓을 때도 버티고 서 있었다. 겨우 이 곳에서 무너질 수 없다. 그들은 상처뿐인 날개를 다시 한 번 펼쳤다. 불타고 남은 깃에 황금이 새겨졌다. 성스러운 천사에게 남겨진 것. 의심을 품은 천사가 감히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모두가 그것을 보고 숨을 삼켰다. 완전무결한 천사의 증표가, 어떻게 이단아- 타천사에게 붙는단 말인가! 경악스런 시선에 꿋꿋이 서서 황금의 검을 치켜들었다.
우린 내리쬐는 따스한 햇살에서 작열통을 느꼈고, 가느다란 바람에서 폭풍의 편린을 보았다. 그럼에도 무리지지 않고, 꿋꿋하게 버텼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가 폭풍을 만들 차례였다.
돌아가자, 우리의 불신이, 의심이 시작된 곳으로. 그들에게 확신을 받아내기 위해서 다시 돌아가자. 우리의 모든 의심이 시작한 곳은 성당이었으니, 그 곳으로 돌아가자.
"이 너머로, 그 누구도 넘어갈 수 없어."
"감히 넘어가려거든, 내 목을 베어봐."
그녀의 황금의 깃이 태양처럼 번뜩이고, 공중에 푸른 물결이 일었다. 곧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만 같은 폭풍이 만들어졌고, 이 너머로 그 누구도 넘어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폭풍 속 햇살이 비추는 것에 맞춰 심장이 빠르게 박동했다. 공포도, 환희도 아닌 이 감정 속에서 그들의 시선이 얽혔다. 그녀가 웃었고, 그 역시 짧게 웃었다.
"잘 하고 와요, 레이드."
"그래, 다녀올게."
그들은 가볍게 주먹을 맞대었다. 그리고 금방 손을 거두었다. 그녀의 손에는 황금의 검이 생겼고, 칠흑같은 눈에는 하얀 이채가 서렸다. 그 하얀 성당의 문을 등지고 서서 기꺼이 남은 이들을 상대했다. 그는 그것을 보고 성당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결코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았다. 말하지 않는다고 해도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랜 시간동안 같이 지내왔으니. 이젠 그 눈빛의 파편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무엇을 할 것인지.
그들은 날아오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그들은 서로의 자리를 지켰다.
이제 마지막 시간이다.
그는 한때 안식처였던 곳으로 다시금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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