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언제나 해답 없는 고민을 했다. 지독할 정도로 해답이 없는 고민은 종종 쓸데없는 고민으로 취급이 되곤 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그가 하는 고민은 일종의 쓸데없는 고민일 테다. 불현듯 생각을 이어나가길 꺼려하는 -싫어한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생각났다. 그것에 저도 모르게 침체되는 기분이었다. 가족을 사랑해야 하고, 아껴주어야 하고, 그리고, 또... 집어치워라. 그런 얄팍한 말들로 달래질 상황도, 마음도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끈질기게도 붙잡고 마는 고민은 그가 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어쩌면 착함을 강요받았고, 스스로도 그 모습을 지키고 싶어 했다. 일종의 강박관념이다.
"..."
착한 게 나쁜 게 아니잖아요. 스스로 내뱉은 말이 지금은 비수로 꽂힌다. 그는 지끈거리는 생각을 여전히 이어갔다. 무한히 떠오르는 질문들 중 굳이 가장 어려운 질문을 골라내어 제 스스로에게 던졌다. 나는 좋은 사람인가.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비춰지는가. 모두가 찬사를 보낼만한 행동을 하거나, 모두가 납득할만한 행동을 한다고 해도 나 스스로가 그것을 납득할 수 있나. 나는, 나의 형을... 애증 어린 시선을 보내면서도 온전히 미워할 수 없어 결국 어설프게 밀쳐내어, 결국 더욱 큰 상흔을 남기고 만 제 형을 용서할 수 있나. 다른 사람이라면 몰랐지만, 선함을 하나의 강박관념으로 가진 그에게는 어려운 질문이었다. 용서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안 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행동에, 내 스스로가 떳떳할 수 있나?.. 아니, 아니다. 나는 내 형을 용서하지 않는 것으로 더욱 괴로움을 느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용서하는 것에서도 괴로움을 느끼는 것은, 그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증거였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저도 모르게 토기가 쏠리는 지독한 생각에 한숨조차 쉬지 못했다.
그는 언제나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만한 선함을 행했다. 그래봤자 남들의 눈에는 지독한 선행이었겠지만 말이다. 그는 제 선에 이해할 수 있다면 공감하려 노력했고, 그렇게 공감할 수 있게 된다면 배려했다. 작은 실수 정도는 눈감아줄 수 있고, 용서해줄 수도 있었다. 그는 누가 봐도 참 좋은 사람이었다. 정말 우습게도, 그런 강박적인 선함은 제 가족에게만큼은 적용되지 않았다. 이건 나답지 않다. 애초에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스스로에게 속삭인 말도... 되돌아보면 참, 우습지 않은 것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형의 상황에 이해할 수 있었지만 공감할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던 배려가 어설픈 손길로 틀어막힌다. 제 형에게만큼은 결코 친절을 흘려보내지 않는다. 난 결국 이것밖에 안되던 사람이었다. 위선자, 마음 한 구석에서 그런 말이 들려온다. 그 말을 건네는 것은 제 형의 모습이 아니라 저 자신의 목소리였다. 스스로의 목소리까지 외면하면서도 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미련인지, 분노인지, 증오인지, 아니면 마찬가지로 증오 어린 애정인지... 구분할 수 없었고, 필요도 없었다. 결국 모든 것이 혼재된 것이었으니.
나는 결국 형과 똑같구나. 형제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지금 형을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내가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떳떳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숨마저 틀어막힐 죄악감 속에 몸을 뉘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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