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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연교

안녕, 머지않아 다시 만날 사람.

by @Zena__aneZ 2024. 7. 28.

밤하늘보다도 짙푸른 짧은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바람이 불어옴에 따라 모든 청색이 흔들린다. 은하는 가만히 숨을 내쉰다. 은하를 바라보던 다른 이가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낸다. 그를 가만히 보다가 가만히 고개를 기울인다. 뭘 그리 걱정하고 있습니까? 그 질문에 한참을 머뭇거리던 이는 애써 말을 이어간다. 제가 은하 님처럼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요. 이제 은하 님은 은퇴하고, 제가 오롯이 한 지역의 책임자로 남는 건데... 그게 걱정돼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없다는 건 알지만... 흐린 말끝을 듣곤 은하는 픽, 하는 웃음을 흘린다.

 

"제가 다음 자리를 맡긴 건 당신이 유능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잘 해왔잖아요."

 

"그래도요. 은하 님이 없었으면..."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지요. 다만 당신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래서 맡긴 겁니다. 그 말을 듣던 이는 옅은 웃음을 머금는다. 오랜 시간 책임자 자리에 있던 은하는 일을 가르치던 이에게 책임자의 자리를 넘겨준다. 처음에는 그저 막막했다. 은하가 워낙 유능하던 사람이었기에 당장 마음에 차는 사람도 없었고, 당장 그를 어려워하던 사람도 많았다. 다만 은하를 믿고 따라와 준 이들도, 어려운 일이지만 기꺼이 해 보이던 사람도 많았다. 은하는 다음 자리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과 함께 내일은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여지조차 없었다는 것에 무척이나 안심했다. 이제는 다 괜찮았다. 은하는 오래전 누군가와 나누었던 약속을 떠올린다. 먼저 떠나간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포기하지 말자고. 은하는 그 약속을 지켰다.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도 버텼다. 은하를 바라보던 이는 그를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슬픔 같기도 했고, 씁쓸함 같기도 했으며, 혹은 어떠한 것을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온 사람 같기도 했다. 아주 깊은 사랑은 슬픔과 같다고 했던가. 은하는 저를 바라보는 이를 보곤 느긋한 웃음을 머금을 뿐이었다.

 

"그럼, 이제 가겠습니다. 남은 일 힘내고, 모르는 것 있으면 찾아와서 물어보세요."

 

"앗, 네! 언제나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은하 님!"

 

은하는 느릿하게 손만 흔들고 걸음을 옮겼다. 건물을 나서고, 숲길에 들어선다. 상쾌한 공기가 폐 안을 가득 채운다. 더 이상 온전한 육신이라고 할 수 없는 것에 흐릿한 온기가 일렁거린다. 이제 곧 영혼의 축복이 사라진다. 빠르면 몇 달 내로, 느리면 몇 년 내로. 지금 은하는 시한부와 다를 것이 없는 상황이다. 그것이 슬프냐고 묻는다면, 결탄코 아니라고 대답할 테다. 죽음은 두렵지 않다. 긴 시간을 살아오면서 죽음이 두려웠던 적은 없었다. 그에게 죽음이란 그리 낯선 개념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이가 죽으며 영혼의 축복을 남겨 주었으니 죽음이란 항상 곁에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두렵지 않다. 죽음 이후에는 그를 만날 수 있으니까. 자신의 영혼인 사람에게 한 점 부끄러움도 없이 살아내었으니 약속을 못 지켰다고 미안해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니 다시 만나는 날이 온다면 열심히 살아냈다고, 수고했다고... 그리 말해주기를 바란다. 내 영혼인 당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냈다고. 기다려주어 고맙다고. 바람이 시원스럽게 흩어진다. 햇살이 맑았다. 누군가가 사랑해 마지않던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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