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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연교

슬픔에 절망과 환희를.

by @Zena__aneZ 2024. 5. 2.

영원히 내릴 것 같은 비가 그친다. 하루 내리 쏟아지던 비가 그치니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어온다. 디안 리오네트의 고향에는 비가 잘 내리지 않았다. 잠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새에 비가 그렇게 쏟아질 줄 누가 알았을까. 디안은 아주 오랜만에 검은 하늘을 보고 있었다. 하나의 달과 수많은 별이 휘영청 떠서 아스라이 빛난다. 겨울의 하늘과는 다르게, 흐릿하게 반짝였다. 아직도 먹구름이 흘러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눈에 담을 여유가 없는 것인지 본인도 몰랐다. 한숨을 내쉰다. 하얀 입김이 나오지 않는다. 겨울향기 가득한 고향에서는 모든 숨에 입김이 흩어지는 곳이었다. 오로지 죽은 사람에게만 입김이라고 할 것이 흘러나오지 않는다. 망할, 왜 또 그저 그런 기억이 떠오르는 건지. 입안에서 욕설을 잘게 짓씹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묘한 울렁거림이 느껴진다. 자연스럽게 바닥을 향한 시선 안에는 빗물에 질척이는 흙길이 보인다. 오늘은 다른 지역으로 나와서는 안 됐다. 애초에 비가 올 것을 알았다면 오지 않았을 텐데.

디안 리오네트는 비가 오는 게 싫었다. 바닥에 고인 물에 흙이 질척하게 변하면 과거의 악몽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흙이 뜨뜻미지근한 피로 질척거리고, 바닥에 누워있는 사람의, 사람들의 입에서 입김이 더는 흘러나오지 않는다. 눈물이 비처럼 떨어지며 몸이 뻣뻣하게 굳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참으로 하잘것없는 운명이었다.

 

하늘에 휘영청 떠있는 별 아래에 서서 수없이 되새겨본다. 디안 리오네트가 가진 감정과 행동의 근원은 슬픔과 복수심이었다. 그는 절망함에 분노했다. 그렇게 분노의 소용돌이 속에서 다짐했다. 내가 느낀 절망감을 되돌려주리라. 그러한 마음은 맹목성이 되었다. 처음에는 맹목성을 품고 복수 하나만을 바라보게 되지만 점차 지쳐간다. 사람의 마음이라고 할만한 것이 다 닳고, 육신까지 어긋나며, 무언가를 느끼는 것에 완전히 지쳐버리고 만다.  디안 리오네트는 무언가를 느끼는 것에 지나친 피로감을 느꼈다. 맹렬한 복수심의 산제물로 자신까지 바친 사람의 말로란 그런 것이었다. 그제야 생각하게 된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사실,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혹은 잘못됐다고 해도 디안 리오네트의 잘못이 아니었을 것이다. '처음'은 그랬을 것이다. 여전히 밝게 빛나는 별들 아래에 서서 끊임없이 생각한다. 쏟아지는 빗물이 눈물처럼 느껴지는 것이 나의 잘못인가. 혹은 나의 잘못이라면, 불쌍하게 죽어버린 이들도 나의 죄인가.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문득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진다. 심장께가 욱신거린다. 표정 하나 구겨지지 않고 통증을 느끼고 있노라면 한탄이 이어진다. 언젠가의 자신이 큰 죄를 지은 게 아닐까?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 한다면, 왜 이 비탄 속에서 삶의 평생이라고 해도 무방할 시간 동안 고통받아야만 하는 거지? 그는 자신의 복수에 의미를 찾을 때쯤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숨을 쉬는 게 버겁고, 하늘은 여전히 검었다.

 

"..."

 

창백해진 손에 애써 힘을 주어 몇 번 쥐었다 편다. 묘한 울렁거림이 확실한 멀미감으로 느껴질 때쯤 숨을 들이쉬다 내쉰다. 약간의 물기를 머금어 한기를 머금은 것보다 부드러운 공기가 폐부를 가득 채운다. 아릿하게 멀어진 현실감이 돌아온다. 슬픔에 번들거리는 붉은 눈이 현실감을 머금고 또렷해지다 탁해진다. 답지 않은 감상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었는데. 하지만 그런 생각을 이어가고 마는 것은 디안 리오네트가 좋은 사람이라는 증거였다.

과거의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아, 부디 내 행동을 용서해 주길. 그렇게 바라며 눈을 감아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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