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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살고 싶은 이의 □□.

by @Zena__aneZ 2024. 7. 11.

하늘에 뿌연 구름이 꼈다. 잔뜩 마른땅에 비가 오려나 싶었다. 서부에는 비가 잘 오지 않았으니 반가운 소식이었다. 가족 중 한 명은 바깥으로 나갔고, 다른 한 명은 집의 창문을 닫았다. 비가 올 것을 대비해 미리 닫아두는 것이었다. 아직 어렸던 소피엔은 다른 어른들을 보곤 방의 창문을 닫았다. 비가 오는 것은 좋았지만 너무 많이 오면 안 되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찰나에 큰 창문 하나가 창틀째로 뜯겨나가 산산이 부서졌다. 바닥에 큰 몸집을 가진 마물이 움직였다. 마물을 제대로 본 것이 처음이라 잔뜩 굳어있을 때 다른 사람 한 명이 무어라 말했다. 어서 집을 벗어나라고. 바깥으로 나가서 시내로 가라고. 무조건 앞만 보고 뛰라는 말이 하릴없이 흩어졌다. 눈앞에서 사람의 복부가 뚫려 그대로 바닥에 축 늘어졌다. 방금까지 멀쩡했었는데... 너무나도 현실감 없는 장면에 인지가 무너져 내린다. 다른 가족들이 바깥으로 도망쳤다. 아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다른 사람들이 도망친 문으로 달려가 문고리를 잡고 돌렸지만 막혀 있었다. 나갈 때 잠갔나? 버리고 간 걸까? 소피엔은 바로 부서진 창문 쪽으로 뛰어갔다. 발에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박히는 것도 같았지만 전혀 아프지 않았다. 공포심에 모든 게 마비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

 

창문을 넘어서는 순간, 마물이 그 행동을 알아채고 기다란 줄기와 같은 것을 뻗는다. 그대로 발목이 뚫리는 감각에 몸이 넘어진다. 발이 떨어져 나갔고, 집 밖으로 나왔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이 상태로 달리면 틀림없이 죽을 게 뻔한데... 떨어져 나간 발목을 내려다본다. 끔찍한 작열통과 같은 감각이 들었다. 독이 있는 마물일까? 그렇다면, 나는 죽는 걸까? 끔찍한 공포에 휩쓸려 그대로 굳었다. 누군가가 도망치라고 말하는 것도 같았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온통 아득하기만 했을 뿐이었다. 다시 창문을 넘어온 마물이 기어 오고,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도망치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들을 리 없었다.

마물이 약한 피부와 뼈를 우악스럽게 까득거리며 씹어 삼킨다. 차마 버틸 수 없는 작열통이 엄습한다. 목에 불쾌한 이물감이 파고들어 마비되는 통증이 퍼져나가고, 머지않아 눈앞이 아득해진다. 점차 숨을 쉬기 어려워진다. 어른에 비해 한참 작은 손이 바닥을 긁었다. 손톱이 부러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더 큰 고통이 모든 사소한 고통을 짓눌렀다. 하늘에서는 차가운 비가 내렸다. 차마 아프다는 말조차 짓눌려 사라질 때, 차가운 빗물에 뜨거운 피가 씻겨져 내려갈 때 가느다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살고 싶어요... 그런 바람이 누구에게 닿았는지, 주변에 차가운 한기가 내려앉았다.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한겨울의 눈처럼 차가운 감각이 작열통을 서서히 씻어 내린다. 눈에서 피와 함께 눈물이 섞여 흐른다. 살았구나, 살아남았구나. 그 감각이 안도감이 되어 밀려든다. 몸이 불타는 통증이 서서히 옅어진다. 흐르던 피가 얼어붙는다. 목에 깊이 남은 상흔과 눈 위에 끈적한 약과 붕대가 둘러진다. 작열통은 많이 옅어졌지만 아직도 상처부위가 아릿하다. 마비되어 가는 시야 사이로 보인 사람의 모습을 힘겹게 눈에 담다가 잠에 빠져든다. 눈을 뜨면 많은 것이 나아져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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