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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건조한 바람의 향기.

by @Zena__aneZ 2024. 7. 10.

광야에는 늘 건조한 바람이 불어온다. 이곳의 바람은 북부만큼은 아니겠으나 꽤 매섭다. 햇살을 받으면 맑은 푸른빛으로 빛나는 검푸른 장막빛의 머리칼이 느릿하게 흔들린다. 꽃이나 풀의 싱그러운 향기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곳. 소피엔은 그런 광야를 바라본다. 눈을 굳게 감고 있었으니 그것이 보이는 것은 아니겠지만. 누군가가 그를 부른다. 소리가 들린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햇살을 받은 의체가 마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곱게 반짝거린다. 발걸음 소리는 단단한 땅 위에 잘 빚어놓은 도자기가 가볍게 부딪히는 소리와 같았다. 소피엔은 허공에서 손을 가볍게 움직인다. 마치 글자를 입력하듯 부드럽게 손을 움직이다가 손을 내렸다. 찾으셨나요? 부드러운 음성까지 함께 출력되는 것을 보면, 소피엔이 어느 정도로 사려 깊은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전에 말했던 친구 있죠? 의족 쓴다는 애요. 그 친구 좀 수리해 주세요."

 

[ 이쪽으로 오세요. 심각한 사항이 아니면 금방 끝날 거예요. ]

 

다정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글자들을 띄운다. 말한 상대는 편안해 보였지만, 그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이는 굉장히 불편해 보였다. 이곳에서 소피엔을 모르는 사람은 많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굉장히 친절한 사람이니까. 의체 보유자의 비율이 높은 서부에서 의체를 수리하고 무기도 고칠 수 있는, 거기에 약까지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소피엔 본인은 몰랐지만 서부의 대표가 되는 사람도 찾아갈 정도였으니, 명성이 높은 것이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리 유명한 것과 치료받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신체의 통제권을 완전히 남에게 넘기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까. 소피엔이 안내한 곳의 시술대 위에 누울 때까지도 마음 한 편에 불안감이 넘실거렸다.

소피엔은 늘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네온빛으로 반짝이는 안구가 기이하게 빛난다. 소피엔이 익숙한 글자를 옆의 예비용 화면에 띄운다. 불안한가요? 속내를 들킨 이는 솔직하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불안했다.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려웠다. 육신을 남에게 맡기는 감각이 어떻게 두렵지 않을 수 있을까? 소피엔은 아까와 띄우던 것과 같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인다.

 

[ 잠시 제 모습을 잠깐 보겠어요? ]

 

소피엔은 잠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단단한 의족과 손에 심긴 칩, 그리고 무서울 정도로 섬세한 의안. 이거, 전부 제가 만들었어요. 그리 말하곤 웃는 소리 흘린다. 입에서 바람소리가 옅게 흐른다. 그런 모습을 보곤 그나마 안심하고는 시술대 위에 눕는다. 소피엔은 익숙하게 의족을 열어 망가진 부분을 고친다. 제법 큰 부품이 망가졌는데 심하게 불편하지는 않았냐고 묻는다면 상대는 그저 멋쩍게 웃을 뿐이었다. 망가진 부품을 빼고 새것으로 교체하며 가벼운 테스트를 진행한다. 완벽하게 수리가 된 것을 보곤 손을 뗀다. 한 번 일어나서 걸어보시겠어요? 그 말에 시술대 위에 누워있던 이가 일어나 가볍게 움직인다. 다리가 완전히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소피엔은 맑은 미소를 짓고는 도로 눈을 굳게 감는다.

 

"기술자님, 평소에는 눈을 감고 다니나요?"

 

[ 네, 안구의 출력이 높은 편이라서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아요. ]

 

그래도 다른 감각 시스템이 있어서, 어렴풋한 모양은 인지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하도 이렇게 오래 지냈더니 익숙해졌다고. 의체를 다 고친 이들은 다른 약을 몇 개 사들고 간다. 소피엔은 그들을 익숙하게 배웅한 뒤 잠시 혼자서 서있었다. 쨍하게 드리운 햇살이 보이지 않는 눈앞을 희게 물들인다. 사람은 각자의 방법으로 세상에 적응한다. 누군가는 눈으로 바라보고, 누군가는 불어오는 바람으로 세상을 느낀다. 건조한 바람이 불어오는 광야에서 누군가를 위해 일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뿌듯하다는 말을 홀로 해본다면, 그것은 누군가가, 혹은 무언가가 앗아가 버렸어도 여전히 존재하는 다정함과 같았다. 언뜻 불어온 바람에 옅은 꽃내음이 담겼다. 또 누군가는 그렇게 우연한 바람으로 내일을 그리겠지. 소피엔은 하염없이 서서 햇빛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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