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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눈물의 시대 - 흰 꿈

by @Zena__aneZ 2024. 12. 2.

사람들은 어느 날부터 지독한 악몽을 꾸었다. 단 몇 명이 하루나 이틀 정도 꿈을 꾸는 것이었으면 이 이야기를 시작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긴 시간 동안 집단적으로, 그 자신에게 있어 가장 질 나쁘고 끔찍한 꿈을 꾸고 있었다. 그들은 머지않아 이것이 모두가 꾸는 꿈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국가에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 악몽을 꾸고 있다는 것도 알았고, 악몽을 꿀 때마다 고유 능력이 약해져 갔다는 것도 알았다. 

사고율이 높아졌다. 교통사고나 산업피해는 말할 것도 없었다. 폭행이나 살인과 같은 범죄율도 치솟았다. 악몽이 현실에도 도래한 것만 같았다. 사이비 종교가 힘을 얻고, 기댈 곳이 사라져 가는 이 세상은 거의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비탄했다. 눈물을 흘렸다. 이 악몽이 대체 누구의 짓이야, 누군가의 이능일 텐데, 하지만 한 사람이 대체 어떻게 모두를 상대로? 혹시, 혹시나. 국가가 개입했나? 사람들의 불안은 의심이 되었고, 어느 시점부터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악몽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국가 소속의 이능력자가 된 것이다. 국가가 어떻게 국민을 상대로, 그런 말은 이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다른 국가들도 다 비슷한 상태였으니까. 반란을 일으키려던 이들도 있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급사했다. 앞으로 끌고 가 죽이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을까. 혹은, 내가 죽지 않아 다행이라고 여겼을까. 무슨 생각을 했든, 어떤 행동을 하든... 이 세상은 차츰 빛을 잃었다. 국가가 악몽을 만드는 이능력자를 이용해 국민을 통제하는 것은 거의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삑삑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이 빛을 다해가는 것만큼 하얀 병실 내부는 고요했다. 한가운데 누워있는 사람의 표정은 엉망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채 비명조차 되지 못하는 가래 끓는 숨소리. 비 오듯 흐르는 식은땀. 흰 머리카락보다도 창백한 흰 피부는 비쩍 말라 있었다. 꿈을 만들어내는 힘을 나쁜 쪽으로 사용하는 것을 강요받은 뒤 제정신을 차린 적이 거의 없었다. 꿈을 만들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잠을 자야만 하기 때문에. 치유와 관련된 힘을 가진 사람들이 표정 없이 그의 곁에 서 있었다. 그들의 일은 오로지 그것이었다. 능력을 쓰고 괴로워하는 사람을 죽지 않게 하는 것. 그리하여,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중 한 사람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건 옳은 일이 아니잖아요. 그런 말을 내뱉으면서도 찡그림 하나조차 없었다. 정말 웃기지도 않는 말이었고...

당장 문 밖에는 전투 계열의 힘을 가진 사람들이 대기 중이었다. 반항하면 죽일 수 있도록. 치유사는 또 부르면 그만이라고. 꿈을 만드는 사람은 귀하니까... 하얀 병실 안에 녹음 머금은 색채와 연푸른빛 머금은 색채가 감돈다. 그 사이에 주홍빛이 깃들어 치유 능력을 강화한다. 안 그래도 일그러지던 환자의 표정이 더욱 엉망이 되었다. 몸이 나아짐에 따라 악몽도 심해진 것이겠지. 불쌍한 사람. 가련한 사람... 10년이나 이렇게 연명을 하고 있는데, 여전히 구해줄 사람 하나 없고. 삑삑거리는 소리가 요란하다가, 다시 고요해진다. 

 

"옳은 일이 아니지."

 

"그러면 어떻게 할래?"

 

"..."

 

그저 연명하는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죽을까 두려워하며 이 자를 치료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악몽을 꾸지 않는 자들은 그것 때문에 더더욱 제정신이 아니었다. 수많은 치유사들이 죽었다. 이 불쌍한 환자를 죽이려고 한 치유사들은 전부 다 죽었다. 성공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이들의 곁에 서있던 단 한 사람. 주홍빛 힘을 다루던 사람은 타인의 능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강화는 약화를 동반했고, 치유는 죽음을 동반했으므로. 삑삑거리는 소리는 여전했다. 병상에 누워있던 사람이 눈을 떴다. 연명하는 삶에는 의미가 없다고. 꿈을 통해 우리를 들여다보던 자는 마치 모든 것을 관망하는 사람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관망하고, 원망하며, 친애하는...  바깥에 사람들이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치유사들은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누워있는 자는, 더욱 길게 숨을 내뱉었다. 마치 폐에 있는 모든 바람을 빼내는 것처럼. 이윽고 날아갈 준비를 하는 새처럼. 이명과도 같은 기계 소리가 길게 늘어졌다.  아마도 우리는 무사하지 못하겠지. 아무도 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이만 날아갈 준비를 하자.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쏟아진다.

긴 밤이 지나간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는 꿈을 꾸었다. 희게 빛바랜 것이 아니라, 공허함의 흰색을 꿈꿨다. 서글픈 꿈이 끝났다. 국가는 무너졌고,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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