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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러 챌린지

거짓과 함께 진실을 바쳐.

by @Zena__aneZ 2022. 8. 6.

트리거 워닝 : 유혈, 죽음, 시체 (언급만)

 

이 글은 전부 가상의 현실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상기 명시된 소재는 현실에서 일어나선 안 되는 것이며, 일어난다고 하면 비극적인 일입니다. 글쓴이는 이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위와 같은 일을 옹호하거나 지지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눈앞에서 하얀 구름이 넘실거렸다. 한 줄기 애도조차 없는 푸른 장례식이 치러졌다. 포뮤의 가느다란 손이 하늘로 뻗어졌다. 피로 물든 손이 볼품없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빠르게 뛰던 심장 박동이 서서히 느려진다. 하늘을 향하던 손이 바닥에 떨어졌다. 주변이 고요하다. 그는 항상 귀가 멀 듯한 침묵을 견디지 못했으나, 이번만큼은 그 침묵이 참 고맙다.

그 침묵 사이로 조심히 걸어오는 이가 있었다. 포뮤는 그를 바라보고 웃어 보였다.

"마젠타, 그 색을 기억하고 있어."

자홍빛으로 빛나는 눈을 가진 그는 말없이 포뮤를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보랏빛 머리카락이 길게 늘어져 바람에 나풀거렸다. 포뮤는 그 사람을 잘 알고 있었다. 처참하게 죽은 제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해주고, 또한 짧은 시간이나마 자신을 챙겨주었다. 짧은 시간 동안 챙겨주었지만, 그런 시간은 아플 만큼 고맙고 다정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그랬기에 정부군이라는 존재를 온전히 증오할 수 없었다. 제 아버지를 죽이고, 이제는 자신까지 죽인 것은 정부군이었으나- 나를 살린 것도 정부군이었으니까.

"아버지의 시신을, 당신이 수습해주었지. 내 시신까지 수습하게 해서 어째."

"..."

"여전히 과묵하네."

"..."

"당신의 과묵함은.. 언제나, 내게 위로가 됐어."

참 실없는 말이지? 포뮤가 눈을 감고 웃었다. 도저히 당신의 표정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당신이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면 나도 울고 싶어질까 봐. 이제야 아버지를 만나러 갈 수 있는데, 웃으면서 가야 하니까...

그는 그런 포뮤에게 손을 뻗어 부드럽게 안아 들었다. 양팔에 무거운 피가 배어 들었다. 그런 사소한 것은 신경 쓰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포뮤의 백 금빛 머리카락이 풀어진 채로 흔들렸다.
끝은 혼자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다행이다,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고, 여전히 다정한 그 사람의 행동에 포뮤가 웃었다.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곳은 없어?"

"미련도, 보고 싶은 것도- 아무것도 없어.."

그가 말했다. 기계음 섞인 미형의 목소리였다. 포뮤는 그 목소리를 듣고 웃으며 말했다. 뻔한 거짓말이었다.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둘 다 알았으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 걸음을 옮겼다. 거짓말이 위안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됐다고 생각했다.

포뮤는 뻔한 거짓말을 했고, 그는 언제나 뻔한 거짓말을 받아주었다.

"내가, 완전히 죽으면.. 바다에..."

".. 그래. 바다로 가자."

"..."

"너와 네 아버지가 돌아갈 곳으로. 내가 데려다줄게."

포뮤는 그 말에 눈을 뜨지 않은 채 안심했다. 그가 자신을 바다로 데려가 줄 테니까. 이렇게 한스러운 삶의 끝에 다정했던 이를 다시 만나니, 정말 기뻤다.

그는 걸음을 옮기며 그때를 생각했다. 포뮤와 처음 만났을 그때를. 포뮤의 아버지는 다른 정부군의 손에 의해 죽어있었고, 겁에 질린 어린아이는 그를 경계했다. 그는 길고도 짧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포뮤를 돌봐주었다.
어느 날, 아직도 어린아이였던 포뮤가 이야기해주었다.

".. 나중에, 내가 죽으면- 바다에 데려다줘."

"특별한, 이유가 있어?"

"엄마도, 아빠도- 모두, 바다로 갔으니까."


포뮤의 아버지는 포뮤의 어머니를 바다로 떠나보냈으며, 포뮤의 아버지 역시 포뮤의 부탁으로 바다로 떠나보냈다. 바다에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은 오래된 장례식 중 하나였다. 특히나 돈 없는, 가난한 이들의 장례식이었다.

그는 포뮤의 말을 떠올리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파란 파도가 사납게 일었다.

"도착했어."

"..."

"이제, 가족에게 돌아갈 때야."

그는 숨이 멈춘 이를 바라보다, 파도 속에 놓아주었다. 사납게 몰아치는 파도는 꽃과도 같은 아이를 삼켜냈다. 깊은 바닷속에서 그들이 만날까. 만났으면 좋겠다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그는 하염없이 서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백금빛의 꽃을 향한 한 줄기의 애도를 바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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