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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러 챌린지

우리는 끝내 앓을 수밖에 없었다.

by @Zena__aneZ 2022. 8. 6.

우리는 알고 있었다.
우리가 너무나도 다른 것을.

암흑 속에서 태어난 것만 같은 남자는 전설 속에나 있을 검은 태양을 닮았고, 설원 속에서 태어난 것만 같은 여자는 전설 속에나 있을 공허한 달을 닮았다.
둘은 정말, 빈말로도 어울리지 않았다. 허나 그 어울리지 않는 것은 하나의 조화가 되어 서로를 지켰다. 여자의 하얀 머리카락이 물결치듯 흔들릴 때면, 남자는 여자의 머리칼을 정성껏 정리해주었다. 남자의 검은 눈이 여자에게 향할 때면, 여자는 덧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서로에게만 비추는 다정한 모습들에는 위화감이란 단 한 점도 없었다.

온통 검은빛의 남자는 온통 하얀빛의 여자를 사랑했고, 온통 하얀빛의 여자는 온통 검은빛의 남자를 사랑했다.

허나 그들은 너무나도 달랐다. 다른 모습에 홀리듯 이끌린 그들은 너무나 지독하게 사랑했으며 지독하게 싸웠다. 누군가는 그것을 보고 불꽃과도 같은 사랑이라 하겠으나, 사랑을 나누는 그들은 그 정열적인 사랑에 고통스러워했다. 서로가 서로를 불태우며 얼어붙어가는 고통을 보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을 지켜보고 괴로워했다. 자기 자신의 고통보다도 사랑하는 이의 고통이 더 중요했던 까닭이다.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병이라고 했지만, 그들은 그 말에 공감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불꽃과도 같은 사랑은 불협화음과도 같은, 세상에서 가장 황홀하며 끔찍한 행복이었다.

그들은 지독한 열병과도 같은 사랑에 언제나 끙끙대었다. 그 열병을 끝내려 이별도 생각했으나, 열병마저 사랑한 그들은 헤어지지 못했다. 서로를 철저히 망가트리며 사랑했다.

한여름과 같은 남자와 한겨울과 같은 여자가 만나니, 이 얼마나 황홀하고 끔찍한 계절의 조화인가. 둘은 서로를 집어삼키고야 말 끝없는 고통마저 사랑했으니. 그것은 필히 행복임과 동시에 불행이었다. 그들은 찬연한 지옥 속에서, 기어코 서로를 집어삼켜내고 뱉어낸 채로 헤어졌다. 그들은 너무나도 달랐기에, 서로를 차마 죽이지 못한 채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남자는 여름으로 향했으며, 여자는 겨울로 향했다.
드디어 평화로운 날이었다.

그들은 사랑이 끝난 이후에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 다시 만난다면 다시 사랑에 빠질 것 같아서. 다시 미련을 가지고, 상대를 붙잡을 것만 같아서.

그들은 끝까지 사랑이라는 열병에 앓았고, 열병이 끝나자 손에 남은 미련을 고이 묻어두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 모든 감정이, 그 사람과의 열병이, 그 사랑의 잔해가 전부 추억이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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