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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러 챌린지

새벽의 해바라기는 지지 않는다.

by @Zena__aneZ 2022. 8. 11.

트리거 워닝 : (친구들의) 죽음, 생체실험 암시

 

이 글은 전부 가상의 현실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상기 명시된 소재는 현실에서 일어나선 안 되는 것이며, 일어난다고 하면 비극적인 일입니다. 글쓴이는 이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위와 같은 일을 미화할 목적이 없고 옹호하거나 지지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셔벗은 창문을 타고 나와서 바닥에 가볍게 발을 디뎠다. 흑빛의 짧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리고, 햇빛의 한 조각을 담아놓은 듯한 붉은 핏빛의 눈은 어슴푸레 떨어지는 녹빛의 햇살에 반짝였다. 한풀 꺾인 여름의 더위를 보고 있자니, 비 오는 내내 눅눅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셔벗은 언제나 잠이 적은 편이었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그랬기에 깨어있는 시간이 많았고, 새벽 내내 산책을 하며 남들은 잠에 빠져든 시간을 눈뜬 채 보냈다. 산책을 시작하게 되면, 그 작은 발걸음은 언제나 화단으로 향했다. 연구소에 있을 때에는 보지 못한 싱그러운 생기가 가득한 곳이었다. 싱그러움이 가득한 곳은, 언제나 셔벗에게 길게 늘어진 안정감을 주었다. 화단에는 키가 큰 노란 꽃들이 자라나 있었다. 해바라기였다.

"해바라기는 요정이라고 하던데."

언젠가 들은 얘기였다. 해바라기는 태양을 너무나도 사랑한 요정이 꽃이 되어버린 거라고. 셔벗은 그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직 어렸지만, 가족과도 같은 친구들을 지키고 싶었던 마음은 그런 사랑보다도 컸다. 셔벗은 친구들이 소중했다. 그리고, 하나뿐인 제 동생도 소중했다. 그렇게 소중한 이들을 어떻게 안 지키고 싶을 수 있을까.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아마, 해바라기도 셔벗과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멀지 않은 과거의 일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 멀지 않은 일인데, 이제는 너무 오래된 일인 것만 같았다. 기억 속 또렷하게 남아있는 친구들의 얼굴은 점차 색을 잃어갔다. 마치 오래된 사진을 꺼내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소중한 기억 속에 남아있는 친구들의 얼굴이 너무나 아름다워, 차마 말로 다 이루지 못할 감정들이 넘실거렸다. 셔벗은 아직 어린아이였지만, 그런 감정은 사랑의 한 종류라는 것을 알았다. 셔벗은 온전히 친구들을 바라보며 사랑했으니, 그것이 어떻게 해바라기가 하는 것과 다를 수 있을까. 셔벗은 얌전히 감은 눈을 떴다.

"나만큼은, 너희들을 온전히 그리워할 테니까.."

이제는 아무런 걱정 말고, 푹 쉬어. 속삭이듯 말한 셔벗은 잔잔하게 웃어 보였다. 붉은 눈에 언뜻 그리움이 스쳐 지나갔다. 온몸을 무겁게 눌러대는 그리움이라는 감정에도, 셔벗은 결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사랑하는 친구들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는 없었으니까. 고개를 든 채로 온전히 그리워하는 것이, 그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해바라기가 가득 피어있는 꽃밭 위에 녹음 짙은 햇살이 드리운다.
해바라기는 결코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그렇게 꿋꿋하게 서서 햇살을 바라본다.
녹음 가득한 새벽의 해바라기는 지지 않는다.
새벽 한가운데 서 있는 셔벗 역시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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