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된 요소 : 죽음, 전쟁 암시
이 글은 전부 가상의 현실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상기 명시된 소재는 현실에서 일어나선 안 되는 것이며, 일어난다고 하면 비극적인 일입니다. 글쓴이는 이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위와 같은 일을 옹호하거나 지지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제 멀리 떠납니다.
그 사람은 떠나면 편지도 못 할 것이고, 어쩌면 오래도록 돌아오지 못할 거예요. 길고 긴 여행길에 사랑하는 사람이 오르다니, 마음은 영 뒤숭숭해요.
"돌아오는 거지요? 계속 기다릴 테니까요."
"그럼, 꼭 돌아올게. 약속할 테니까."
새끼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해도 마음은 영 무겁습니다. 웃으며 배웅해주어야 사랑하는 그 이가 편히 여행길에 오를 텐데.. 웃음이 영 나오질 않아요. 가지 말아 달라고 하면 안 갈까, 그런 생각도 했지만.. 책임을 이고 나아가는 모습마저 사랑해서, 저는 그 말을 꾹꾹 삼켰습니다.
그 이는 나를 끌어안아주었어요. 그 포근함에 속절없이 마음이 놓여버리는 것이, 우리의 사랑은 한없이 깊은 바다와도 같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알 수 없는 마음을 가지게 해요.
"꼭 돌아와요. 돌아와서 나랑 결혼하는 거에요."
"그래, 꼭 멋지게 청혼할게."
그 이는 마지막으로 웃어주며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저는 그 모습에 속절없이 눈물이 흘렀네요. 저의 친구들은 저와 함께 울었지요. 친구들의 사랑하는 이들도 그 이와 함께 여행길에 올랐거든요.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이리 가슴 아픈 이별을 해야 한다니, 슬프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큰 달이 몇 번 오가고, 사계절이 두 번 바뀔 때쯤. 떠난 이들이 돌아왔습니다. 저와 제 친구들은 그이들을 맞이해주었답니다.
모두가 행복에 겨워 울고 웃는데 저는 웃지도, 울지도 못했습니다. 저의 이는 돌아오지 못했어요. 손때 묻은 편지 하나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어요. 편지를 전해주던 그 이의 친구의 표정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저 그 편지만 하염없이 바라보게 되었지요. 그 이는 왜, 이토록 저를 기다리게 하는지. 그 편지를 가슴에 묻고 오래도록 울었습니다. 눈앞이 희게 변하며, 한 번은 쓰러졌던 것 같기도 했지만.. 그 이의 편지가 너무나도 가슴을 쓰리게 만들어, 차마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의 편지만을 품고 살아갔습니다. 돌아오지 않을 그 이를 기다리면서, 오래도록 살아갔습니다.
사계절이 열 번이 바뀌고,
사계절이 스무 번이 바뀌고,
사계절이 서른 번이 바뀌며,
다시 사계절이 열 번 지나갔지요.
그 이를 떠나보내던 어리고 곱던 손에는 주름이 졌으나, 그 이를 기다리는 눈에는 여전히 그리움이 가득합니다.
언제나 하얀 의자에 앉아 바닷가를 바라봅니다. 파도가 희게 부서집니다. 그 이가 저 파도에 다치지는 않을까, 돌아오는 길이 힘들지 않을까. 그런 걱정도 듭니다. 저는 아직도, 오래도록.. 그 이가 보고 싶습니다.
"— 달아."
어느새 하얀 꽃밭이었습니다. 저는 꽃밭에 놀라기 전에, 목소리에 더 놀랐습니다. 그 이의 목소리였어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봤습니다.
"달아, 오래 기다렸지."
저는 차마 울지도 못하고 그 이를 바라봤습니다. 그 이는 저를 보고 수줍게 웃었어요. 하얀 꽃을 들고 서있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늙은 모습이었답니다. 하지만 옷만큼은, 여행길에 오르기 전 그대로였습니다. 저의 모습도 그랬답니다. 저의 연한 갈색 치맛자락이 눈에 들어왔거든요.
그 이가 제게 다가왔고, 저는 그저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지요.
"너무, 너무 오래 걸렸잖아요.."
서러움과 기쁨이 강물처럼 흘러나왔어요. 저는, 그 강물과도 같은 감정을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 이는 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꽃을 주었습니다.
"달아, 여전히 고와. 청혼을 받아줘."
"당신의 청혼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
다 늙은 목소리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마저도 너무 기뻤답니다. 그 이의 꽃다발을 받아 들자, 저도, 그 이의 모습도 과거로 돌아갔어요. 여행길에 오르기 전의 모습으로요.
우리는 손을 잡고, 꽃밭의 끝까지, 함께 걸을 거랍니다. 그것은 우리의 못다 한 여행이지요. 여행이 끝나면 다시 이별이겠지만, 이제는 이별의 끝에 눈부신 만남이 있을 것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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