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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러 챌린지

엇갈린 길에서.

by @Zena__aneZ 2022. 8. 19.

헤시아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푸른 눈에 화사하게도 맑은 하늘이 그림처럼 비쳤다. 현실감마저 상실할 것 같은 푸름은 언제나 그의 심장을 들쑤셨다. 언제나 그를 뒤흔들던 푸름이었다.
들쑤셔진 심장 사이로 과거의 기억이 흘러나왔다.

"... 셰피아."

그 부름에 대답해줄 이가 없었으니 고개를 떨구었다. 멈춰선 걸음이 다시 나아갈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애써 걸음을 옮기며 끊임없이 생각했다. 그런 끊임없는 생각은 과거의 기억이었으며, 한 줌의 미련이었다.
가장 처음으로 흘러나온 기억으로는, 동생을 두고 혼자 떠나온 그 날이었다. 그 날의 하늘이 참, 덧없이도 푸르렀다. 그 다음으로는, 처음 맛보는 평화로운 나날에 약속을 망각하다- 겨우 약속을 떠올리고 발걸음을 옮기던 날이 떠올랐다. 그 날의 바다는 참으로, 여전히도. 더없이 아름다웠다.
첫 기억은 약속을 한 순간이며, 두 번째 기억은 한쪽은 약속이 깨져나간 순간이었다. 조각난 약속을 손에 그러쥐니 공허한 상처가 생겨, 찬 겨울공기에 폐부가 쓰릴만큼 시렸다. 약속이라는 것은 톱니바퀴와 같았다. 단 한 번 어긋나기 시작하니 모든 것이 어긋났다. 과거의 약속과 믿음은 깨졌다. 과거로부터 비롯된 현재의 안정은 사라졌으며, 현재의 안정이 사라지자 미래를 기대하는 마음은 한 줌도 남아있지 않았다.
부모를 떠나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가족이라는 존재는 동생 하나만 있게 되었는데, 약속을 깨버렸다는 가냘픈 죄책감은 가족을 만나러 가는 길을 늘 잊어버리게 했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셰피아도 마찬가지였다. 손 안에 남은 약속의 부스러기에 언제나 슬픔에 겨워 고개를 들었다. 보랏빛 눈 안에 비친 밤하늘이 한 폭의 설움이 되어, 슬프게도 시렸다. 하나뿐인 가족과 만나지 못한 서글픔보다 약속을 깼다는 죄책감이 더욱 컸다.
그리움보다 미안함이 더 커졌으니, 그 누구도 모르게 유지되고 있던 가족이라는 끈은 완전히 찢어졌다. 이제는 정말, 남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것을 알았던 까닭에 서로를 찾아갈 수 없었다. 둘은 이미 너무나도 다른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 헤시아. .."

가볍게 중얼거린 그 목소리에 이토록 앓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은, 가족이 더 이상 가족이 아니게 되었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슬픔이었다. 셰피아는 다시금 홀로 발걸음을 옮겼다, 헤시아가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그보다 더 확실한 발걸음으로. 슬플지언정 미련은 없었다. 그것이 둘의 가장 큰 차이였으리라.

둘 다 처음은 틀린 길을 걸었겠으나, 지금은 다른 길을 걷는다. 이만큼이나 다른 마음을 품고서. 이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지금 올려다보는 하늘의 색의 깊이만큼이나 달랐다.
멀리 떨어져 서로 다르게 올려다본 하늘이, 오늘따라 참 쓸쓸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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