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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비의 별

by @Zena__aneZ 2023. 3. 24.

비가 끊임없이 쏟아진다. 이 비는 멎지 않을 것이다.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러겠지.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노력 따위는 하지 않은 채 빠르게 걸음을 옮긴다. 깊고 깊은 밤이었으나 걸음이 느려질 일은 없었다. 어두운 것은 익숙했으니. 불현듯 숨이 찬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하려 달리느라 힘든 것이라고 치부했다. 이 정도로 체력이 바닥났을 리 없음을 스스로도 알면서도. 익숙하게 건물 난간을 붙잡고 다른 곳으로 뛰었다. 뒤편에선 건물의 난간이 부서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만 더 늦었어도 떨어지는 건 자신이 됐겠지. 발아래서 바스러지는 건물의 파편이 거슬리는 감각 따위는 가뿐히 무시하며 지대가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빗물이 언제 들이찰지 모르는 상황에서 계속 낮은 곳에 있다가는 그대로 물에 잠겨버릴 테다. 혹여나 불안정한 건물이 무너진다고 하면 빠져나오지도 못할 테고. 매끄럽게 움직이며 계속 높은 곳으로 올라가던 플로드는 서서히 걸음을 멈추었다. 비는 여전히 쏟아지고 있었고, 지금 이곳은 완전히 안전한 곳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멈춘 이유는, 지금 플로드가 서있는 곳은 물의 소용돌이가 가장 잘 보이는 위치였다.

 

사방이 막혀 지어진 건물들의 가운데에는 한번 들어가면 쉬이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을 품고 있었다. 가운데 녹지를 만들고자 했으나, 지금은 그 한가운데 물을 가득 품고 있었다. 한때는 안정감을 주는 작은 숲이었던 것이 사람들을 집어삼키는 작은 지옥으로 변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플로드는 무감한 눈으로 물의 소용돌이를 바라봤다. 물 위에는 반짝이는 것들이 떠오르며 밀려든다. 멀리서 본다면 그저 반짝이는 별처럼 보인다. 하늘에서 떨어진 별처럼...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저 검푸른 소용돌이 위에서 빛나고 있는 것은 제가 입고 있는 옷과 같은 것이었다. 사람은 별의 잔해로 만들어졌으니 추락한 별이라는 잔인한 말은 무척이나 잘어울렸다. 저들은 아마도 운 나쁘게 물에 빠졌거나, 그들을 구하려 자진해서 소용돌이 안으로 들어갔거나. 전자는 불쌍한 상황이었고 후자는 미친 짓이다. 하지만 미친 짓을 하지 않고서야 견딜 수 없어지는 이들도 있기 마련이다. 플로드가 과거의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세차게 내리는 비 속에서 빛이 흐리게 반짝인다. 그들은 그것을 비의 별이라고 불렀다. 멀리서 본다면 아름다운 것이지만, 가까이서 본다면 더없을 참극이었다.

 

발을 디디고 있는 바닥에서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더 오래 서있다간 정말 위험했다. 곧 소용돌이 안으로 추락할 바닥을 박차고 뛰었다. 그리고 뒤돌아보지 않았다. 이 비가 잠잠해지면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다짐했다. 소용돌이 안으로 추락하고 만 별들을 사랑했던 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플로드가 사랑했던 이들을 위해서. 우리가 지키고자 했던 이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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