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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독 머금은 음악.

by @Zena__aneZ 2024. 3. 12.

격정적인 선율, 빠른 흐름, 난잡할지도 모를 음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곳의 한가운데서 평화롭게 체스를 두고 있다.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한 사람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가 나지막이 말을 건넨다. 이렇게 있어도 괜찮은 것이냐고. 어차피 이 싸움은 우리의 승리가 확실해요. 평온하게 찻잔을 입에 갖다 대는 그를 보는 사람은 여전히 안절부절못하며 시선을 굴린다. 곧 투박한 나무의 문이 열리더니 한 사람이 거의 기어 오듯이 들어온다. 옅은 피냄새가 풍긴다. 그는 기어들어오는 사람을 보곤 부드럽게 웃었다.

 

"결과를 말해 봐요."

 

"... 월광, 당신의 완벽한 승리입니다."

 

모든 건 당신의 계획대로 되었습니다. 지분 싸움을 하던 사람은 모두 죽었고, 그것은 다시 원래 주인에게 돌아갔으며 그로 인해 모든 비리를 잡아내면서... 원래 주인은 크게 기뻐하며 지분의 일부를 당신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말까지 들은 그는 밝게 웃었다. 곱게 휘어진 눈꼬리 사이로 보이는 눈은 하얗고 투명하게 빛났다. 그가 곧 고개를 돌린다. 제 말이 맞았죠? 그러니 그만 떨어요. 그의 옆에 서 있던 사람은 한숨을 내쉬곤 방 밖으로 걸음을 옮긴다. 시끄러운 음악에서 벗어나니 머리 한 구석에 남아있는 통증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의 존재 자체가 무서웠던 걸까? 이내 빠르게 생각을 떨쳐내고 보고하기 위해 회사로 향했다.

월광의 표면적인 위치는 어떠한 사기업의 대표 격의 인물이었다. 어린 나이에 자수성가한 성실한 사람. 하지만 실상은 완전히 달랐다. 그는 모든 것의 설계자였다. 사기업을 키운 것도, 다른 모든 것도 자신과, 혹은 대의를 위해서였다. 월광은 자신의 대의가 무엇인지 단 한 번도 밝힌 적 없다. 다만 그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물러나는 사람이 아니었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희생이 생기든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른 대기업, 혹은 국가를 상대로 이기는 도박판만 여는 사람이 바로 월광이었다. 다만 그런 행보로 많은 범죄자를 잡아들이고 많은 사람을 구한 것은 또 명확한 사실이라 그 대의라는 것이 언젠가 갈 길을 잃은 칼이 되어 죄 없는 불특정 다수에게 향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파도야."

 

"네, 월광 님."

 

낡아 삐걱거리는 창문이 활짝 열린다. 창틀에는 그보다 어려 보이는 외형을 지닌- 사람처럼 생긴 인형이 창가에 앉았다가 조용히 일어나서 방 안을 가득 채우던 음악을 끈다. 음악이 사라지고, 이윽고 고요가 방 안을 가득 채운다. 찬 바람이 머리칼을 흩트려놓는다. 활짝 열린 창문에서 쏟아지는 빛은 월광의 발치에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았다. 파도야, 이쪽으로 와서 체스판을 보렴. 파도는 가만히 발걸음을 옮겨 체스판을 바라본다. 체스 위에는 체스말 대신 색이 전부 똑같은 바둑돌만 놓여 있었다. 하지만 월광은 바둑돌만 있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전부 외우고 있으니까. 판의 흐름, 앞으로의 진행까지 전부 눈 위에 새겨져 있으니 완벽한 월광의 승리일 수밖에 없었다. 파도의 육신은 그저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형이었고, 그 안에 사령술로 담긴 사람은 혼은 살아있을 적 전투에만 능했기 때문에 하나도 몰랐다. 그저 검고 흰 돌이 수 놓이듯 올려진 판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다음에는 체스판만 준비해. 아무것도 없이 고요하게 생각하고 싶어. 파도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한 걸음 물러났다.

월광이 만드는 모든 것은 치명적인 독이다. 그 아름다운 외모에 품은 것은 또한 잔인한 물살이었고, 고요하게도 몰아치는 것은 비수보다도 날카로웠다. 아무도 그가 바라는 것을 모른다. 자기 자신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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