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늘 착각을 하고 살았던 것 같다. 덧없는 청춘을 파랗게 불태워 세상을 지킨다면 비로소 안전해진다는 착각 말이다. 세상을 구하는 것은 늘 청춘이었고, 그들은 청춘을 파랗게 태워 청색 시대를 이룩해 냈다.
청춘의 한가운데서 살아가는 사람은 그런 파란이 싫었다. 누군가가 희생해야만 유지되는 세상이 싫었고, 강요받지 않고도 희생하는 청춘이 싫었다. 비극이다. 치유사인 사람은 그것을 가만히 바라본다. 인생의 젊은 시절은 의미도 없이 조각나 피와 살점이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영영 숨을 잃어버린 파란 사람들의 눈을 감겨주어야만 했다. 눈을 감을 힘도 없이 죽어버린 청춘이 불쌍해서. 나 대신 희생하고 만 청춘이 안쓰러워서.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은 가볍게 여기는 청춘에 못내 마음이 쓰여서. 같은 청춘이지만 뒤에 서있을 수밖에 없는 치유사인 것이 미안해서.
"미안합니다, 치유사님. 저 때문에..."
"미안해하지 마세요. 이게 내 일이니까요."
칸나는 다친 사람의 팔에 붕대를 감아주었다. 전투를 하는 사람들은 지킨 것보다 지키지 못한 것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가장 앞에 서있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랬다. 붕대에 은은한 빛이 깃들었다. 싸우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렇게 크지도 않은 부상 하나까지 처치해 주었기에 세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칸나는 그저 피를 보는 것이 싫었다. 죽은 사람을 가장 많이 마주하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치유사였기 때문이다. 푸름이 죽은 자리가 붉게 물드는 것이 끔찍하게도 싫었으면서도 치유사를 그만두지 않는 이유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을 지킬 사람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능력이 부족해서, 무서워서 서있는데 자신과 비슷한 나잇대의 사람들이 사지로 몸을 내던지는 것을 보며 그들을 대단하다고 여기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어쩌면 자신도 그렇게 누군가를 위해 희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품지 않을까? 모두가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이 파란 세상 속에서 청춘을 지킬 사람은 같은 청춘밖에 없었으므로.
"치유사님은 왜 그 직업을 고르셨어요? 전투도 꽤 잘하시잖아요."
"희생하는 걸 두고 보는 게 싫어서요."
오랜 시간 이어진 생각이 목소리를 통해 비로소 힘을 얻는다. 죽음은 푸르고 상실은 하얗고 희생은 덧없으며, 살리는 자는 계속 살릴 수밖에 없었고 사지로 뛰어드는 자들은 계속 죽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청춘들은 끝없는 파란-Blue, 波瀾- 속에서 넘실거리다 사라진다. 그래서 상처를 지우는 사람으로 남고자 했다. 누군가는 비겁하다고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비난해도 상관없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상처 입은 사람을 돌봐야만 했다. 칸나는 분홍빛이 땅을 가득 메울 계절이 될 때 찾아오는 죽음을 알았고, 보랏빛이 하늘을 가득 메울 시간이 될 때 찾아오는 절망을 알았다. 죽음과 절망을 막고자 세상 속에서 숨을 내던지는 사람들을 기어이 끌고 올라오는 것이 바로 치유사였다. 손끝이 피로 물들어간다. 파란 속에서 넘실거리는 세상의 비통함이, 푸름의 시취(屍臭)가 지독하다. 또 죽은 사람의 눈을 감겨준다. 눈을 감고 짧은 기도문을 읊은 뒤 몸을 일으킨다.
"칸나 님! 바로 이쪽으로 와주실 수 있나요?! 도움이-"
"바로 갈게요."
스태프를 손에 꼭 쥔다. 손에 묻은 타인의 피가 끈적거린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그게 칸나가 선택한 길이었고, 칸나는 선택 앞에서 타협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늘도 하늘이 파랗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