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내음이 바람을 타고 넘실거리며 흘러간다. 하늘을 가득 채운 새파란이 흐른다. 그 사이에 수놓인 몽글몽글한 구름은 쉴새없이 흔들린다. 로즈는 가느다란 손을 가만히 뻗어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것 같은 구름을 바라본다. 붉고 하얀 시선은 하늘을 눈 안에 가득 담는다. 고운 머리카락 안에 푸름을 가득 담고 있던 이였지만 여전히 넓게 퍼져있는 푸름을 훨씬 더 좋아했다. 그것은 자유로웠고, 부드러웠으며, 언젠가의 추억을 떠올리기에 딱 알맞았으니까. 로즈는 하늘을 보며 덧없는 추억을 그린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은 미소를 떠올린다. 이제는 존재하지 않을 가족의 얼굴을 떠올린다. 로즈는 늘 하늘에서 가족들의 미소를 찾았고, 그것을 끈질기게도 사랑했다. 곧 주변에 느껴지는 감각에 시선을 돌린다. 눈 안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들어온다.
"늦었네."
"일이 조금 있었거든요."
많이 기다렸어요? 그렇게 말하고는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렇게 오래 기다리진 않았다고 대답하며 가만히 시선을 굴렸다. 그저 풀어내린 머리칼이 봄바람에 흔들렸다. 그것이 영 귀찮았는지 잠시 표정을 찌푸리는 것을 본 크림은 가만히 몸을 일으켜 늘 하나씩 챙기고 다니던 머리끈으로 로즈의 머리칼을 낮게 묶어주었다. 조심스럽고 부드러운 손길에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곧 눈을 뜨고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 얼굴에는 늘 봐오던, 로즈가 좋아하는 부드러운 미소가 새겨져 있었다. 로즈는 손을 뻗어서 그의 뺨을 간지럽히는 밀빛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그냥 앉아있기에는 심심한데, 걸을까? 그 말에 얕은 웃음이 번졌다. 두 손을 다정하게 맞잡고 걸음을 옮겼다. 이제 완연한 봄이었다. 꽃은 바람에 넘실거렸고, 그렇게 넘실거리던 꽃잎은 떨어져 자유롭게 흩어지듯 사라진다. 온갖 무채색이 휘날리던 설원은 어느덧 꽃으로 가득 찼다. 로즈는 맞잡은 손에 약간 힘을 주었다. 그것을 느낀 이는 여전하게도 웃으며 조심히 감쌌다. 걷는 길에는 꽃나무가 많았다. 로즈는 식물을 다룰 수 있지만 정작 관심은 없었다. 온갖 꽃들이 가득했지만 명확하게 이름을 모른다. 이름마저도 꽃이었으나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은 또한 아이러니였다. 이런 곳을 거닐면서도 로즈가 품은 장미향만이 가득한 것은 또한 나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꽤 추웠던 것 같은데, 이제 따뜻하네요."
"그러네. 꽃향기가 가득해."
붉고 하얀 눈이 주렁주렁 열린 꽃봉우리를 깨끗하게 담아낸다. 로즈는 가만히 꽃들을 바라본다. 꽃향기에 머리가 아플 법도 했으나 맞잡은 손이 좋아 계속 둘러보고 싶었다. 로즈는 손을 가만히 잡고 있다가 앞으로 먼저 걸었다. 앞에 더 예쁜 풍경이 있을 것 같아. 로즈는 뒤를 돌아본다. 느슨하게 묶은 머리칼이 부드럽게 풀린다. 연푸른빛 가득한 머리칼이 하늘과 어우러지는 듯 흐트러진다. 밀빛 품은 이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 밝게 웃으며 걸음을 맞춘다.
혼자 가면 잃어버릴지도 모르니 같이 걸어요.
그래, 언제든지 같이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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