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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세상은 인형극이었으니.

by @Zena__aneZ 2024. 7. 5.

리네이스 피오니는 흔히 말하는 아가씨와 같은 사람이었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걱정 하나 없을 것 같은 삶을 살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손에 넣을 수도 있을 정도로, 걱정도 무엇도 없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피오니는 세상의 이면을 알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웃을 수 있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피오니는 자신에게 있는 돈을 허투루 쓰는 법 없이 잘 모아두었다가 자선사업을 펼쳤다. 다만 피오니는 이 세상에 퍼져있는 악에 대해 몰랐고, 그래서 편협한 선행을 행했다. 진심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 만연한 악에 의해 짓밟히는 줄도 모르는 것이 우습지 않은가. 피오니는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선행을 베푸는 사람이었지만, 또 다른 누군가의 눈을 통해서 본다면 그저 위선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럼에도 피오니는 상냥한 사람이었기에 모든 것이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 그저 위선이라 여겼던 행동에서 진심을 찾아내는 사람도 있었고, 진심으로 친절한 이였으나 무지하기도 한 모습을 보고 실망하는 사람도 있었다. 피오니는 다른 이들의 행동을 보고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진의를 오해하는 것 정도는 익숙했다. 하지만 긴 시간이 지나서야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는다.

피오니는 남부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자신의 고향에 대해 알아볼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으나 무언가 잘못된 것만 같은 감각이 확실하게 다가온 탓이었다. 그렇게 알게 된 사실은 새삼스럽게도 참 충격적이었다. 이제껏 알아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이 세상은 온통 인형극이다. 사람들의 무지함과 개인의 이득을 위한 이기심, 통제하고자 하는 욕심을 무대로 삼는다.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만든 모든 시스템이 되레 사람을 위협하고 있는 꼴이다. 대체 이 인형극과 다름없는 통제된 세상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안전함과 통제의 경계를 구분 짓는 것은 정확히 어떤 것일까? 이런 고민을 하는 건 너무 늦은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약간의 죄책감도 있었다. 이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만 같았다. 온전히 피오니의 탓이 아니라고 해도 그가 속한 세상의 잘못인 것은 틀림없었으니까.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 하면 나빠지기만 하지 않을까?

 

피오니는 그 생각을 한 날 이후로 많은 고민을 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던 사람들의 관계에 대해서. 특히 부모님과의 관계에 대하여. 피오니의 세상이 늘 좁았던 것은 그의 주변인과 부모가, 그리고 사회가 다른 이들의 세상이 좁길 바라서였다. 알고 싶은 것에 대하여 돌아오는 대답이 없으니 자연스레 관심이 끊기는 것도 있었다. 조금 더 끈질긴 사람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이제라도 제대로 알게 되었으니 다행일까.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바꿀 수 있는 게 있을까. 피오니는 머지않아 결정을 내렸다. 가장 잘하는 것을 하자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이들끼리 모여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의논한다. 예전부터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구상하는 것을 좋아했으니 이것이 진짜 천직일까 싶기도 했다.

 

"저, 동부에 가보려고요. 다른 지역들도 돌아다녀볼 생각이에요."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운 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고 회의적인 반응이었지만 분명히 지지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피오니는 전처럼, 자신의 선택을 마지막으로 믿어보기로 했다. 망설이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것은 지금껏 숱하게 겪어오며 깨달은 것이었으니까. 이제 인형극의 바깥으로 나설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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