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생존 if
오래도록 살아가는 것에 의미가 있을까? 신을, 재앙을 만드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지? 주술을 주입당하는 이가 몇 번이고 한 생각이었다. 선명한 붉은 눈이 희미하고 탁하게 빛난다. 수도 없이 반복해 온 끔찍한 주술 주입 실험은 몸을 한계까지 밀어 넣었다. 자기 통제력을 잃게 되는 것만 같은 감각이 엄습하면 다시금 숨을 가다듬는다. 다 무너져 내린 것을 기어이 붙잡는다. 자기 통제력을 잃지 않는 것은 명이 몇 번이나 되새긴 생각 때문이었다. 아이들의 손을 놓치기 싫었다. 그저 그것뿐이었다. 몇 번이고 검붉은 피를 토하고, 눈에선 눈물 대신 검은 물줄기가 흐른다. 아득해지는 정신에 입이 벌어진다면 입에 어떤 약물이 들어온다. 정신을 강제로 깨우는 독약이다. 주술실험을 할 때에는 결코 정신을 잃어선 안 됐기 때문에. 억지로 다문 입에서 가느다란 소리 하나가 흘러나온다. 그것은 아주 고통스러운 소리였다.
새하얗던 옷이 피에 더러워진다. 묶인 손목을 한참이나 덜컥대며 움직이지만 단단한 매듭이 풀릴 리가 없었다. 고통에 몸을 바르작대면서도 입술을 다시 짓씹는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어떤 집착이라도 되는 것처럼.
주술의 검고 끈적한 것이 피부 아래를 기어 다니고 온 신경을 불태우는 감각을 선사한다. 지옥도의 한 장면을 그리라고 한다면, 지옥도를 그려야 하는 이는 틀림없이 지금 그의 모습을 그려내리라.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었다는 사실은 익숙했으나 이 고통에는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겠거니 싶었다. 입에 다시 흘러들어온 독약을 기어이 삼키고는 고통스러운 기침을 해댄다. 아직도 토해낼 피가 남아있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다. 신체 말단 부위부터 검은빛의 색채가 퍼져나가다 사그라든다. 실험의 성공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잘 벼려진 비수를 몸에 꽂았다. 차가운 날붙이의 감각에 차마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몸을 움츠린다. 비수를 빼니, 상처가 아물고 머지않아 큰 흉터가 생긴다. 이번 실험도 역시 성공이었다. 다만 온몸에 상처와 흉터로 뒤덮인 자는 몸을 떨어댈 뿐이었으니...
눈가가 붉게 짓무르고 몸은 제 의지와 다르게 계속 떨린다. 사람들이 방을 나선다. 실험이 끝났으나 고통까지 끝나지는 않았다. 단단히 묶인 매듭이 풀릴 때까지 손목을 움직인다. 붉게 쓸리다 못해 심하게 붓는 지경이 되어서야 손목을 옭아매던 끈이 풀렸다.
주술진을 새겨둔 재단 위에서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이 정도는 아프지도 않아. 아프지 않아... 스스로를 세뇌하듯 말하지만 목에서는 가시를 삼키는 고통이 느껴졌다. 그저 기어가듯 하다가 몸을 겨우 일으켜 문고리를 잡고 돌린다. 몸이 부서질 듯 아팠지만 계속 걸었다. 왜 걷는가, 하고 물어본다면 그 자신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숨을 쉴 때마다 폐가 뜯겨나가는 것만 같았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리가 불타는 것만 같았으며... 그럼에도, 다른 아이들이 걱정되었노라고. 미련하고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한 이는 어쩔 수 없었다.
고통스럽고 가냘픈 시선이 기어이 닿은 곳은 어떤 한 장소였다. 가주가 늘 서있던 곳이다. 이 지옥을 만든 사람. 수많은 아이들을 죽여나간 증오스러운 사람이 죽어있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렸다. 당신은 이렇게 죽으면 안 됐다. 평생을 고통받아야지.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으면 평생을 후회해야지. 그래야만 했는데. 몸에 힘이 빠진다. 그렇게 주저앉았다. 사실 그는 지킬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나약했으니까. 할 수 없었으니까. 사실, 할 수만 있었다면, 모두를 구했을 것이라고. 이 한 몸 전부 태워버릴 수도 있었는데. 내 손으로 당신을 영원한 지옥 속으로 밀어 넣었어야 했는데... 이게 억울함인지 무엇인지도 모를 정도로 비탄하고 있노라면, 휘가 명의 몸을 조심히 안아 들었다. 저보다 작은 아이가 긴 시간이 지나 훌쩍 커버렸다.
휘, 많이 컸구나. 언제 이렇게 컸지. 항상 내가 안아줬는데... 두서없이 나오는 말을 그저 흘려보낸다. 습관적으로 다정한 미소를 짓고 있으나 눈에서는 눈물이 계속 흘렀다. 다른 아이들도 무사한 것 같은데, 그저 슬펐다. 처절하게도 아팠다. 그동안 손을 놓친 아이들이 너무나도 보고 싶어서. 어딘가 망가진 것만 같았다. 여전히 부서질 듯 아팠다. 며칠 전 바닥을 긁다 다 부러진 손톱에서는 또다시 피가 흐르고,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흐른다. 마치 이들의 끝없는 비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