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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물약로그

by @Zena__aneZ 2024. 7. 23.

손에 들어온 작은 유리병을 흔들었다. 잿빛의 물약이 역한 낌새로 찰랑거린다. 달아람은 그것을 뚫어질 기세로 쳐다보다가 병의 마개를 열어 입에 갔다 대어 약물을 털어 넣었다. 어떤 것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독은 없었다. 버리기에는 찝찝하기에 병을 기울여 약물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는 것에 잠시 표정을 찡그리기도 했다. 보통 독약은 무미무취인 것이 많았으니. 조금 더 분석을 해볼 것을 그랬나...
물약을 전부 삼키자 몸에 자리 잡은 수많은 흉터가 욱신거린다. 이제는 다 잊고 살던 통증이 다시금 덧대어진다. ... 아하. 지난 고통을 불러오는 약물인가. 질 나쁘네. 그리 중얼거리며 빈 유리병을 우악스럽게 쥐어 산산조각 낸다. 녹음 짙은, 잔뜩 신경질적인 마나에 조각난 유리조각마저 녹고 불타며, 찢어발겨지며 사라졌다. 손에 남은 얕은 상처에서는 감각이라고 할만한 것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더 큰 감각이 있으면 작은 감각이 짓눌려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니. 여전히 끔찍한 통증이 느껴짐에 따라 손이 떨린다. 하지만 통증을 참는 것은 그에게 있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나...

"..."

손의 야트막한 상처에서 흐르는 한 줄기 피만이 선명한 감각을 지녔다. 그것이 지나치게 불쾌했다. 그 감각은 저만치 떨어져 있던 오랜 기억을 불러온다. 기억에서 올라오는 모든 통증에 신경질이 나다가도 지나치게 차분하게 만들었다. 머릿속을 끓는 물과 얼음물에 번갈아 담금질하는 기분이었다. 상처인 줄도 모르던 것이 아픔에 따라 조금은 어지럽기도 했다. 모든 게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다 지나갔으니 됐다고 여겼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 모든 것이 그럴듯한 착각이었나? 다 잊고 살아가면서, 기실은 잊은 적도 없었으면서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세웠던 것이... 상처였나? 상처로 인해서 만들어진 집착이었던 건가? 혹은, 그 모든 것을 전부 포함해서였을까?
상처받은 줄도 모르고 상처받는 아둔한 것. 그러니 놓아주지도 못하고... 입술을 잘근 씹다가 한숨을 길게 내쉰다.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이라 여겼으면서 이 단순한 것으로 또렷하게 다가오는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였다.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굴러 떨어진다. 하늘은 여전히 높고 푸르렀다. 습기 머금고 뜨겁게 불어오는 바람이 싫다. 몸 위에 새겨진 상처는 이제 아프지도 않을 정도였지만, 영혼에서 기어올라오는 고통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그래서, 그냥... 이 상황이 너무나도 짜증이 났다. 그저 그런 것뿐이다.

짜증 나고 피곤했다. 아프되 아프지 않은 이 빌어먹을 감각이 죽도록 싫었다. 뜯어낼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흐르는 눈물을 그저 내버려 둔 채로 그저 서있기만 했다. 저 건너의 과거에 지독하리만치 상처 입었던 그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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