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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선명한 푸름은 자유이니.

by @Zena__aneZ 2024. 8. 17.

삶은 덧없다. 그 안에 깃든 푸름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우리가 살아내는 것은 오로지 투쟁하며 추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니,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기 전까지... 약속이야. 그날까지 함께하기로.
짙은 푸름 아래 검은색 머리칼과 짙은 갈색 머리칼이 한데 어우러져 바람에 흐드러진다. 흔한 들꽃도, 예쁜 옷도 없었으나 짙푸른 자유가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아름다운 맹세였다. 서로를 빤히 들여다보던 선명한 청색의 눈과 부드러운 분홍색의 눈이 곱게 휘어진다.

"영원히 사랑해."

"나도, 영원히 사랑해."

가볍게 이마를 맞댔다. 가을의 바람이 청량하다. 시민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자들은 남몰래 결혼식을 올린다. 시원한 바람소리가 음악을 대신한다. 아, 자유롭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자유로워. 이 세상의 유일한 사랑과 나누는 온기가 소중하다. 둘은 뺨에 입을 맞추고 일어선다. 꿈결 같은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그래서 더 포기할 수 없다. 끔찍한 사회 속에서 나누는 야트막한 온기도 이리 소중한데, 진정한 자유를 찾게 된다면 얼마나 기쁠까. 그래서 둘은 함께 자유를 위해 싸웠다. 그것은 아주 고되고 괴로웠으나 포기할 수 없었다. 자유를 위해서. 모두를 위해서. 언젠가 푸른 하늘 아래 함께 서있을 군중을, 그리고 그 속에 함께 있을 우리를, 서로를 위해서.

"이번에 나가는 거지? 조심해, □□□. 네가 강하다는 것을 알지만..."

"이번에도 무사히 돌아올 테니까 걱정 마. 약속이야."

다녀오면 맛있는 샌드위치 만들어줄 수 있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다음 순간을 약속한다. 그 말을 들은 갈색 머리칼을 가진 이는 엷은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 말을 들은 이는 밝게 웃곤 그에게 한 번 안겼다. 다녀올게. 그 말을 하곤 걸음을 옮긴다. 이어폰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지원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큰일이었거든요. 새삼스럽게 무얼. 이번 일만 성공하면 그 구역도 안정화되는 거잖아. 금방 갈게. 가지고 있던 자그마한 큐브 하나를 꺼내 손 위에서 으스러트린다. 가벼운 부유감과 함께 눈앞의 풍경이 뒤바뀐다.
마법과 공학이 뒤섞인 채로 발전한 이 세상은 온갖 착취와 억압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약자는 약자로, 강자는 강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 세상을 바꾸고자 하려는 의지조차 말소되어 갈 때, 한 집단이 나타났다. 그 집단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렇게 거대한 혁명단이 되었다. 그중에서 선명한 청색의 눈을 가진 이는 혁명단의 중앙에 있었다. 이제 20대 중반이라는 어린 나이였지만 그 실력만큼은 무시할 것이 못 되었다. 자유가 잘 어울리는 사람은, 그 모습처럼 자유를 갈망했다. 사랑하는 이들과의 내일을 위해서. 가볍게 숨을 내쉰다. 높게 올려 묶은 머리칼이 흔들린다. 옥상 건물에 앉아서 이곳저곳 걸린 흰 깃발을 바라본다. 작금에 와서 흰 깃발은 자유의 상징이 되었다. 태양을 닮은 흰색은 자유로웠고, 무엇이든 될 수 있었으니까. 손목에 걸린 하얀 팔찌가 태양빛을 받아 반짝인다. 오늘도 무사해. 약속 지켰어. 팔찌에 애정 어린 입맞춤을 하곤 집으로 돌아간다.

"□□□, 왔어?"

"언니~!!!"

다시 가벼운 부유감이 끝났다. 집의 중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아직 어린 여자아이가 품에 와락 안겨든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의 어린 여동생. 그가 친가족처럼, 혹은 그 이상으로 아끼는 존재였다. 활짝 웃으며 갈색 머리칼을 슥슥 쓰다듬다가 부엌에 서있는 이를 바라본다. 샌드위치 만들었어, 손 씻고 와. 너도 언니 귀찮게 하지 말고. 에~ 오빠는 맨날 잔소리만 하고! 그런 대화에 또 실없는 웃음소리를 흘리고 만다.
다 같이 모여 앉아 맛있는 것을 먹는 시간은 귀했다. 그도, 그의 연인도 바쁠 때가 많았으니까. 어린 여동생을 위해 둘 중 한 명은 꼭 집에 있었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언니, 오늘은 괜찮아??"

"당연히 안 다쳤지! 언니 잘했어?"

그의 말을 들은 아이는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다치지 않는 게 당연한 건데! 이 세상은 가혹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럼에도 가족이라고 생각되는 이가 무사한 것을 바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마음이었다. 그는 아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다가 제 연인을 바라본다. 마주친 눈에 애정이 가득하다. 다치면 나도 속상하니까 다치지 마. 내 사랑들을 속상하게 하면 안 된다며 너스레를 떤다. 하늘은 아직 파랗다. 집안에는 햇살이 들었다. 자유를 위해 싸우는 이들은 언제까지나 푸름이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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