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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물빛 초목.

by @Zena__aneZ 2024. 8. 13.

푸른 호수가 존재하는 푸른 숲에서는 맑은 빛의 초목이 자란다. 그런 초목은 부드러운 빛을 머금고 마음껏 반짝인다. 초목에서 태어난 정령은 늘 밝은 빛을 머금고 곱게 빛난다. 맑은 하늘이 투명하게 비치는 에메랄드빛 호수의 색을 그대로 담은 머리카락에서는 상쾌한 물결의 향기가 났고, 수레국화의 빛을 가득 담아낸 깨끗한 눈에서는 파도 향기가 풍긴다. 깨끗하고 투명한 물을 머금고 자라난 초목의 정령은 자연을 사랑했다. 자연의 강대한 힘을 머금고 있으면서도 여린 들풀의 모습을 띠고 있는 이는 사람을 무서워했다. 사람은 자연을 해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니까. 언젠가 한 번은 정령인 그에게 손을 뻗은 적도 있었다.

 

"메르, 괜찮아?!"

 

초목의 정령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겁에 질려 있었다. 정령에게까지 손을 뻗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온몸에 날붙이로 인해 길고 깊은 상처가 새겨졌다. 그 사이로는 끈적한 밤하늘 빛 액체가 흘러내린다. 자연의 꽃내음이 가득 풍기는 액체는 시큰거릴 정도로 달콤한 향이었다. 사람은 너무나도 무섭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에 의해 다친 이는 사람에 의해 지켜졌다. 정령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그저 한참을 떨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니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자신을 걱정했던 이가 그의 곁에 있었을 뿐. 정령은 자연 속에 녹아들어 숨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초목을 꼭 닮은 이는 겁이 많았고, 쉽게 도망쳐버린다.
그럼에도 정령이라면 응당 가지고 있을 호기심은 절대 작지 않았기에 늘 어딘가에 숨어서 사람들을 바라본다. 투명한 초목의 색을 가진 이는 여전히 상냥하고 다정했으며, 그런 다정한 이의 곁에 오래도록 있던 사람도 다정했다.

 

"메르, "

 

이름을 불린 이는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다른 이를 바라본다. 다른 사람 한 명이 그의 머리에 예쁜 꽃 한 송이를 건네준다. 초목의 정령은 꽃을 가만히 보다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이거 먹어도 되나요? 꽃을 건네준 이는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그가 어떤 존재인지를 떠올리곤 웃을 뿐이었다. 선물로 꽃을 건네주는 것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통하는지 모르는 정령은 그저 꽃을 입에 넣고 작게 오물거렸다. 꽃의 달큼한 맛이 기분 좋게 퍼진다. 줄기까지 오독오독 먹고는 잠시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가 금방 돌아온다. 맛있는 것을 줬으니 저도 줄게요! 그리 말하곤 예쁜  과일 하나를 건네준다. 숲 안에서만 자라는 특별한 과일. 그것을 받아 든 이는 잠시 눈을 끔뻑이다 이내 고맙다고 화답했다.

초목의 정령은 다정한 사람과 하염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다른 사람들이 떠나면 손을 흔들어 보이곤 다음에 또 놀러 오라는 말만을 남긴다. 그는 사람을 아주 무서워했지만 모든 사람들이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늘 타인을 향해 웃어 보이곤 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푸른빛의 머리칼을 전부 흩트려놓는다. 가느다란 손으로 긴 머리칼을 쓸어 넘기고 무성한 수풀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에메랄드빛 호수의 색채가 녹음 짙은 수풀 위에 흐드러진다. 보랏빛 스며든 푸른 눈이 여리게 반짝인다. 물빛 초목은 숲의 품에서 잠든다. 자연의 온기가 포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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