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이미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다. 평화도, 관념도, 균형도 이미 잔뜩 기울어진 채였다. 기울어진 세상 위에서 발을 딛노라면 넘어져서 다치고 만다. 칼렌은 그런 세상이 싫었다. 왜 모든 사람들은 기울어진 평화를 원하지? 알 수 없었다. 사실은 이해할 필요도 없었다고. 칼렌이 혼자서 몸을 웅크리고 표정을 찌푸리고 있노라면 그의 형제가 와서 손을 내밀어준다. 칼렌, 표정이 안 좋아. 괜찮아? 어린 칼렌은 그것이 다정함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 손을 잡으며 일어났다. 괜찮아, 누나. 아무렇지도 않아. 그 말에는 또 나직한 미소를 지었다. 그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서로가 너무 잘 알고 있던 탓이었다.
칼렌의 형제, 그러니까 누나인 플론은 완벽한 사람이었다. 좋은 학생, 좋은 자식, 좋은 친구. 좋은 가족이 되어준 그 사람은 그 자신만으로 있는 것만은 하지 못했다. 솔직함으로 살아내기에는 냉혹한 세상이었다. 그래서 자신은 꽁꽁 숨기고 타인이 원하는 사람이 된다. 칼렌은 제 형제가 그렇게 버티는 것이 안쓰러웠고, 플론의 곁에 언제나 함께 있어주었다. 이윽고 둘은 서로만을 가족이라고 여겼다. 어느 쪽도, 다른 한쪽이 없었다면 버틸 수 없었으리라... 그리 생각했다.
"칼렌, 너는 왜 그렇게 철이 없니?"
"..."
칼렌은 플론만큼 훌륭한 학생이나 좋은 사람으로 남지 못했다. 일부러 그렇게 남으려고 하지 않았다. 굳이 좋은 사람일 필요가 없었으니까. 한때는 길게 방황하기도 했고, 가끔은 곁에 있는 사람에게 짜증을 내기도 했다. 애매하게 기울어진 이 세상은, 그리고 만들어진 낙원 속에서만 살아가는 이들은 자꾸만 상흔을 남기고 만다. 대체 뭐가 행운이고 뭐가 더 낫다는 거지? 이건 사람을 사육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 거지? 그런 생각에 휩쓸릴 때면, 그의 곁에는 언제나 플론이 있었다. 그런 생각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혹은, 잡아먹혀도 벗어날 수 있을 때까지. 칼렌은 플론의 손을 잡는다. 기댈 곳을 찾는 사람의 행동과 같았다. 기울어져만 가는 세상에서 서로를 버팀목으로 여기며. 옅은 온기가 위로가 되었다. 둘은 밤이 깊도록 손을 잡고 슬픔 어린 말을 나누었다. 이 세상은 오로지 가시투성이라서 다칠 수밖에 없었으니...
"플론, 나는 잘 모르겠어. 왜 네가 괜찮아 보일 수 있는지. 사실 괜찮았던 적은 없었을 텐데."
"나는 괜찮아 보이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너는 그럴 필요가 없어. 너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있어도 돼."
우리가 아무리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우리는 가족이야. 그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을 거야. 아무리 많이 넘어지고, 아무리 많이 치우쳐진 세상 속에서 닳아 없어지더라도. 함께 있을게. 둘은 약속을 했다. 둘 다 어른이 되는 날 함께 중앙지역을 떠나자고. 기댈 수 있는 가족의 손을 잡고 함께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그리 약속했다.
그 약속은 어떤 것보다도 큰 동기가 되었다. 자꾸만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지지대가 되었고,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는... 그때는 분명,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