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훈련실에 조명이 들어온다. 붉게 깜빡이는 조명이 곧 푸르게 빛난다. 어두운 실내가 차츰 밝아진다. 아이리스는 깊게 눌러쓴 후드를 벗고, 연보랏빛의 긴 머리칼을 높이 올려 묶는다. 마젠타 빛으로 반짝이는 강렬한 눈이 올곧게 앞을 바라본다. 조명이 두어 번 깜빡이더니, 곧 어떤 기계- 혹은 사람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것이 말을 걸어온다. 컴퓨터 그 자체인 존재. 사람에게 AI 시스템을 이식해 초지능을 가지게 된 것은 더 이상 사람이라 부를 수도 없었다. 그것은 이 거대한 정부의 건물 내부에만 존재하게 되었다.
× 훈련 강도는 몇으로 설정하시겠습니까? ×
"8단계."
× 경고. 아이리스 님은 40시간 전 6단계에 해당하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원활한 훈련이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단계를 낮추는 것을 권장합니다. ×
"필요없어. 그대로 진행해."
× 8단계로 설정되었습니다. ×
아이리스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뜬다. 곧 불이 꺼진다. 주변이 새카만 암흑으로 물들고, 곧 기계 안구가 꺼졌다가 켜진다. 몸 곳곳에 달려있는 센서가 요란하게 울린다. 온통 깜빡거리는 시야로 보이는 생체 컴퓨터, 그러니 코어의 모습은 마치 사신과도 같았다. 새까만 대낫 위에 푸른 선이 그어진다. 가벼운 발돋움, 길다란 궤적을 남기며 날카롭게 파고드는 대낫을 팔로 막는다. 에너지 보호막이 까득거리는 소리를 낸다. 대거로 낫을 그대로 튕겨낸다. 아직 낫지 않은 부상에서 기묘한 감각이 기어 올라오는 것은 전혀 신경쓰지 않은 채로 몸을 움직인다. 코어는 우아하게 낫을 움직인다. 새카만 어둠마저 갈라내는 것만 같은 소리가 적막을 지운다. 한기가 느껴진다. 코어의 새빨간 눈이 차갑다. 마치 죽은 사람이 흘리는 피처럼... 이제는 사람도 아닌 것들이었는데. 둘 중에 그 누구도 사람이라 불리지 않는다. 대부분의 자아를 소실한 자에게는 채울 수 없는 공허감이 생겼고, 자아를 겨우 유지한 자에게는 채울 수 없는 상실감이 생겼다. 사람이 아니게 되면서 잃은 것이 너무나도 많은 까닭이었다.
파란 에너지 보호막이 일렁였다. 아이리스는 대거를 단단히 쥔다. 어둠 속에서 금속이 번뜩이는 착각이 인다. 코어는 밤의 어둠보다 짙은 긴 머리칼을 흩날리며 낫을 휘두른다. 아이리스는 제 상처가 터진 것을 무시하고 낫을 쳐낸다. 깊이 파고들어 그를 넘어뜨리곤 머리 옆에 대거를 꽂았다. 코어는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새빨간 기계 안구가 쉼없이 돌아가다가 이내 차분해졌다.
"중간에, 6단계로 변경했지. 왜 갑자기 강도를 낮췄어?"
× 아이리스 님, 상처가 터졌습니다. ×
"그게 적절한 대답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잖아."
× 다른 대답은 더욱 적절하지 않아서. ×
아이리스는 바닥에 꽂힌 대거를 빼고, 위에 반쯤 올라타고 있던 제 몸을 일으킨다. 뒤이어 코어도 넘어진 몸을 일으켰다. 둘은 분명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선에서 서로를 최대한 배려했다. 그것은 둘 사이에 있는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이야기를 해도 나아지는 것이 없을 테니까. 변하지 않는 현실을 나누어 값싼 동정을 주고받을 필요는 없다. 침묵을 위로삼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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