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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언젠가의 미래에.

by @Zena__aneZ 2024. 10. 17.

그는 언제나 화가 난 채였다. 갈길 잃은 분노는 삶을 무자비하게 찢어발긴다. 모든 시간을 분노로 살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분노로 살아가지 않기에는 이 세상은 너무 가혹했다. 숨을 쉬는 것조차 죄스러워질 정도로 폐부가 쓰렸고, 이따금 입에서는 붉은 핏덩이가 쏟아진다. 후각이 마비될 것만 같은 기생꽃의 향기에 토할 것만 같았다. 죄스럽다. 원망스럽다. 원하지도 않은 병을 얻고 옳다구나 하고 버린 가족이라는 작자들이 끔찍하게도 싫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것은, 결국은 온기를 바라고 마는 사실이었다. 멍청한 것아. 미련한 것아. 바보 같은 것아. 이제 온기를 줄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왜 기어이 바라고 말아서. 역하다. 속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죽은 지 한참 된 시체보다도 찬 공기가 호흡기를 타고 끈적하게 흐른다. 문득, 부아가 치민다. 어째서 숨을 쉬는 것조차 이렇게 고통스러워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켁, 우웩..."
 
바닥이 선명한 핏빛으로 덮인다. 바닥을 짚고 있던 희게 질린 손이 온통 핏빛이 되었다. 언제나 생기라고는 없었는데 이런 순간에만 살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온몸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다. 그러다가 감각이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픈 것이 그토록 싫었으면서 감각이 사라지는 것이 끔찍하게 공포스러웠다. 그것이 그의 분노를 더욱 키웠다. 처음부터 감각이라는 것이 없으면 좋았을 텐데. 처음부터 그랬다면... 하지만 처음부터,라는 말을 하기에는 그의 짧은 생에는 불행이 너무나도 많았다. 처음부터 기생꽃에 감염되지 않았더라면. 처음부터 좋은 부모를 만났더라면. 아니, 처음부터, 애초에, 아무것도 못 느꼈다면. 아무것도 없었다면. 마음이라는 것이 없었더라면... 풀과 흙과 핏덩이가 한데 뒤섞여 메마른 손가락 사이로 비죽거린다. 꽃향기가 지독하다. 애석하게도.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는 천이 죄스럽기도 했다. 그 자신을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숨기는 것만 같아서. 숨어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화가 났다. 어째서 잘못한 것도 없는 사람이 숨어야만 하는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얼마 살지도 못할 텐데 그 짧은 시간마저 왜 이토록 고통스러운지도 모르겠다. 아프고 싶지 않았다. 건강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이 참,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괴로워야만 해?"
 
대답해 줄 사람은 여전히 없었다.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다가, 다시 숨을 들이켜고, 헛구역질을 했다. 눈앞이 눈물로 흐려졌다. 피로 얼룩덜룩해진 옷소매로 눈물을 마구 문질러 닦았다. 눈가가 따끔거린다. 애써 눈을 감았다 뜬다. 흰 천은 피로 물들어 바닥을 아무렇게나 나뒹군다. 여전히 숨을 쉬는 것이 괴로웠다. 하지만 눈에 들어온 풍경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수많은 푸른 유성이 하늘에 수놓아지고, 달빛은 상처투성이의 그를 품어주듯 느릿하게 내려올 뿐이었다. 가히 절경이었다. 또다시 눈물이 났다. 이를 악물었다. 설움을 토해낸다. 이 생에는 슬픔도 괴로움도 많았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잘 살아보고 싶었다. 삶을 찬미하고 싶었다. 이렇게 죽도록 아프기만 한 것이 싫었다. 당장 내일 숨이 멎을지도 모르는 이 세상에서, 그저 잘 살고 싶었다. 오로지, 오롯이. 정말 그것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늘 화가 난 채였다. 길 잃은 분노로 제 삶을 스스로 찢어발기지 않는다면 견디지 못할 것만 같아서.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고 하던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화가 난 것일지도 몰랐다. 아. 인생은 너무나도 가혹하다. 그는 아름다운 유성우 아래서 한참을 울었다. 분노로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그에게 있어서 분노라는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독살스러운 병증과 다를 것이 없었다. 무차별적으로 삶을 태워가는 것이 꼭 닮았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아, 생은, 삶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그는 고개를 들었다. 유성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언젠가는 이 고통뿐인 삶도 찬미할 수 있을까. 웃을 수 있을까. 내일의 태양은 또 떠오를 테니까, 언젠가의 미래에도 태양은 떠오를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온전히 슬퍼하도록 하자. 그는 이제 막 고통 속에서 제대로 숨을 쉬기 시작한 참이니까. 내일의 태양은 또다시 떠오르겠으나 이 한스러운 밤은 아직 긴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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