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위로 드리우는 햇빛이 난폭하다. 표정을 일그러트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이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공기가 텁텁하다. 이제 곧 가습기를 꺼내놔야 할 날씨가 온 탓인가. 죽은 듯이 누워만 있다가 몸을 일으킨다. 침대 머리맡 금속 탁자를 손으로 느릿하게 더듬다가 물컵을 들고 목을 축인다. 컵을 씻어야겠다. 그리고 물을 새로 따라야지. 어제 읽다가 만 책이 손끝에 걸리적거린다. 그래, 책도 읽자. 책을 펼치기 전에 샤워를 하고, 그리고 그전에 컵부터... 물을 마셨음에도 입안이 여전히 텁텁하다. 건조함에서 비롯되는 텁텁함이 아닌 탓이다. 뻑뻑하게 메마른 눈을 감았다 뜨곤 몸을 일으킨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수건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몸을 숙이는 것도 싫어 컵을 들고 부엌으로 향했다. 설거지감이라곤 손에 들린 컵이 전부였지만 왜 이렇게 더럽게 느껴지는지 모를 일이다. 문득 참을 수 없는 감정이 엄습한다. 한때는 그게 두려워 참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익숙하다. 그 마음이 익숙한 탓이었을까. 마음에 이름을 붙인 탓이었을까. 알 수 없었다.
세제를 수세미에 짜서 컵을 닦는다. 그 일련의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목의 중간에 덜컥 슬픔이 걸린다. 목 안쪽까지 뻣뻣해지는 느낌을 컵의 물기를 털어내며 모른 체한다. 세제 냄새와 물 냄새. 약간의 기름 냄새... 문득 가스레인지가 눈에 들어왔다. 주방 청소는 내일. 오늘은 아니다. 컵에 깨끗한 물을 담는다. 정수기가 높은 소리를 내며 깨끗한 물을 쏟아내는 것을 또 우두커니 바라본다. 깨끗하고 투명하다. 설거지에 쓰인 물도 이토록 깨끗했다. 하지만 이것은 깨끗하고 저것은 더럽다. 왜 같은 물이 다르게 느껴질까. 문득 숨을 쉬기가 힘든 착각이 엄습한다.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컵을 들어 물을 삼킨다. 처음에는 너무나도 낯설었으나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감정에 대처하는 법을 알았다. 무시하고 모른 체하기. 그것이 안될 때면, 숫자를 세기. 탁류가 몰아칠 때면 마음을 단단히 닫아버리는 것이다. 투명한 만큼 탁한 눈이 창밖으로 향한다. 늘 같은 풍경. 늘 비슷한 감정. 변하지 않는 것. 그럼에도 내리쬐는 햇살은 잔인하며 난폭하고, 흘러가는 구름은 짙은 그림자를 가진다. 햇살 아래 선다면 모든 것이 낱낱이 드러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세상에 그것만큼 짙은 것은 없었으니까. 집안 이곳저곳에 그림자가 생긴다. 햇살이 잘 들어오지 않는 탓이다. 가구 배치를 바꾸고 커튼을 활짝 열면 그림자가 사라지겠으나, 그것이 싫었다. 나를 드러내기 싫었다. 그저 구름의 그림자가 좋았다. 그러면 영원히 숨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그 점이 좋았다. 정신병이라 치부하는 모든 것들은 그렇게 슬그머니 찾아온다. 인생의 곁에 느릿하게 발을 들이고 붙어 앉는다.
우울이 개인의 의지로 해결된다는 말은 이제 진부한 욕설이 되었다. 그런 말을 대신해서 사람들이 찾은 말은 이것이다. 우울이 감기와 같은 것이다. 전부 지나면 낫는다. 지나가면 낫는다. 지금 잠깐 그런 것 일 뿐이다. 그 말을 마치 위로하듯 내뱉는다. 단언컨대, 우울은 감기가 아니다. 마음의 면역력이 떨어져서 걸리는 것도 아니다. 그저, 우울은 우울이다. 슬픔이 슬픔이고, 분노가 분노인 것처럼. 이유를 찾는다면 찾을 수 있겠지만 그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 삶을 우울로 씻어 내린 자의 마음을 감히 무어라고 판단하는가? 손에 들린 컵 안에서 깨끗하고 투명한 물이 일렁인다. 물을 삼킨다. 물비린내가 나는 기분이었다.
먹은 것도 없지만 속이 울렁거렸다. 물을 더 마시는 것을 그만두고 화장실로 향했다. 양치질을 했다. 머리를 감고, 몸을 씻는다. 몸을 대충 닦고 새로운 옷을 꺼냈다. 특별한 외출 계획이 없어 편한 잠옷을 입었다. 살갗에 닿는 면의 감촉이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울렁거림이 사라졌다. 소파 위에 앉아서 다시 창밖을 바라본다. 문득, 책이 읽고 싶었다. 어제 반쯤 읽은 책을 다시 가져와 읽는다.
화려하고 수려한 문장을 손으로 짚어보다가 흐린 표정을 짓는다. 구름 드리운 삶과 황금으로 빚은 문장의 괴리감 때문에 책의 진도를 더 나갈 수가 없었다. 허연 페이지를 손끝으로 툭툭 두드린다. 결국은 책을 덮고 창밖을 내다본다. 구름이 쏜살같이 흘러간다. 사람은 희망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온통 빛나는 생은 없다. 다만, 사람은 그럼에도 살아간다. 울어버리고 마는 삶 속에서 버티고, 차마 화를 낼 힘도 없는 상황도 견뎌낸다. 무너질 것만 같아도 살아낼 뿐이다. 문득 SNS에서 남용되는 단어들이 떠오른다. 정신병이나 우울증은 언제나 희화화되곤 했다. 그것은 그들에게 좋은 볼거리였다. SNS 이용자들이 하는 말처럼 어두운 방 안에서 홀로 괴로워하는 것만이 정신병이라면, 이 일상적인 슬픔에는 대체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까. 우울증이라고 하기에는 얕을지도 모를, 우울감이라고 하기에는 비정상적인 마음에는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까. 알 수가 없었다. 속은 여전히 울렁거린다. 하지만 숨을 쉬는 것이 힘들지는 않았다. 머리가 여전히 축축하다. 수건으로 대충 털어내기만 했을 뿐이니까. 책을 도로 책장에 꽂아 넣고 머리를 드라이기로 말린다. 건조한 바람에 손까지도 바싹 마르는 착각이 일렁거린다. 잠시 거울에 눈길을 주었다가 드라이기를 내려놓고 몸을 일으킨다. 아직 햇살이 잔인하게 내리쬔다. 구름이 다 흘러가 집안을 밝혔다. 아직 아침이다. 오늘은 막 시작한 참이었으니, 이제 또 흘러올 구름을 기다리면 되었다. 그렇게 구름이 찾아오면 짧게 머무를 구름에 몸을 뉘이면 되는 것이다. 오늘은 막 시작한 참이니, 이 병증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밤으로 미루자.
오늘도 역시 일상이다.